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행정권의 발동에는 법령의 근거가 있어야 하며, 법령의 근거가 없는 경우에는 행정개입의 필요가 있더라도 행정권이 발동될 수 없다. 즉, 행정상 필요하다는 사실만으로 행정권은 행사될 수 없고 법적 근거가 있어야 행정권 행사가 가능하다. 이 법률유보의 원칙은 국민의 인권보장 및 민주행정의 실현에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법령으로 규정하여야 할 것을 법령에 해당하지 않는, 더구나 행정규칙도 아닌 지침으로 운영할 경우, 법원에서 이에 대해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이번 지침에는 법적 근거 없는 자의적 해석이 차고 넘친다.   

지침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도급인에게 수급인의 의무와 동일한 의무가 부과되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점이다. 즉, 도급인의 의무 자체가 매우 불명확한 상태이다. 수급인과 공동으로 안전보건조치를 하라는 말도 없고, 수급인에 대해 관리감독을 하라는 말도 없으며, 도급인이 단독으로 하라는 말도 없다. 이번 지침 역시 도급인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의무를 해야 하는지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조직 내에서도 안전보건의 출발점은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하물며 의무주체가 다른 도급인과 수급인 간에 이를 구분해 놓지 않으면 도급인에게 수급인과 동일한 의무를 이행하라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주문이다.

이 문제는 도급인이 제공·지정하는 경우로서 지배·관리하는 장소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지침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언제든지 범법자가 될 리스크를 안게 된다.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한 억지해석을 적용하게 되면, 대기업은 소송을 통해 면책되고 소송능력이 없는 중소기업만 애꿎게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부는 나쁜 의도 없이 개구리에게 돌을 던진 것에 불과하지만, 개구리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지침이 나온 배경에는 법의 무작스러운 개정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행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조속히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근본원인에 해당하는 것은 손대지 않고 얼버무리게 되면 문제가 해결은 되지 않고 난마처럼 뒤엉켜 현장에서 큰 혼란을 초래하고 법집행력도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법령으로 정하여야 할 것을 지침으로 운영하는 것 자체도 문제인데, 내용까지 이처럼 법리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다면, 실효성을 거두기는 기대난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도급인의 순회점검, 협의체, 합동점검의 경우, 많은 논란이 있는 도급인의 지배·관리장소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특히 합동점검의 경우, 실시주체가 법령에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특정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 대해서는 그곳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가 직접 합동점검을 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문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서 도급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건설공사 발주자에 해당하면 도급인 관련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텐데, 지침에서는 이 경우에 대해서도 무조건 도급인 관계규정이 적용되는 것인 양 잘못 설명하고 있다.

지침에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는 있는데, 문제는 내용이 빈약하고 엉성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배·관리의 의미가 너무 모호하다. 그리고 그 범위와 관련하여, 예컨대 ▲시설과 일부 기계·설비는 도급인이 소유하는데 다른 기계·설비는 수급인이 소유하는 경우 ▲도급인이 시설과 기계·설비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관리는 도급인과 수급인이 둘 다 관여하는 경우 ▲일부 기계·설비는 수급인이 소유·관리하는 경우 ▲기계·설비에 대한 전체적인 관리는 수급인이 하는데 유지보수 소요비용은 도급인이 부담하는 경우 ▲시설은 제3자나 수급인이 소유하고 있는데 도급인이 기계.설비운영에 대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 경우 등 도급을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에 대해 도급인에게 해당 장소 전체에 대한 의무가 있는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의무가 있는지 등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지침이라고 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현장은 이래저래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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