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회사 대표이사의 안전보건에 관한 의무와 책임을 강화할 목적으로 대표이사의 이사회 보고 및 승인 등에 관한 규정(제14조)을 신설하였다(시행일: 2021.1.1).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항에 따르면, 상법 제170조에 따른 주식회사 중 ①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을 사용하는 회사, ② 건설산업기본법 제23조에 따라 평가하여 공시된 시공능력(토목·건축공사업) 순위 상위 1천위 이내 건설회사의 대표이사(대표이사가 없는 회사의 경우에는 대표집행임원)는 회사의 정관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① 안전·보건에 관한 경영방침, ② 안전·보건 관리조직의 구성·인원 및 역할, ③ 안전·보건 관련 예산 및 시설 현황, ④ 안전·보건에 관한 전년도 활동실적 및 다음 연도 활동계획을 포함한 회사의 안전·보건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리고 제2항에서는 대표이사는 제1항에 따른 안전·보건계획을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경우에 대해서는 벌칙이 부과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안전·보건에 관한 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하지 아니하거나 승인을 받지 아니한 자(제1항)에 대해서만 벌칙이 있고, 계획을 이행(제2항)하지 않거나 불성실한 이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벌칙이 없다. 즉,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항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하여 승인을 받는 형식적 요건을 충족하면 지방관서로부터 제재를 받을 일은 없다. 만약 회사에서 법적 기준을 형식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 실효성은 매우 적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이 조항은 회사의 자율적인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단순한 서류 작성으로 그칠 공산이 매우 큰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안전보건에 관한 시설 및 비용의 경우 ‘안전보건’과 ‘다른 부문’ 간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각 기업에서 안전보건에 관한 비용, 시설, 인원을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포함해야 할지 매우 난감해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LED 조명 설치는 품질, 효율에도 해당하고 안전에도 해당된다. 그리고 설비의 유지보수는 제조(생산)에도 해당되고 안전에도 해당한다. 시설의 경우에도 대부분 안전교육 외에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전·보건관리 조직의 구성·인원 및 역할이라는 표현 역시 불명확하고 모호하여 각 기업마다 판단이 제각각일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에서 안전보건계획 작성에 대한 해설가이드가 나오지 않으면 작성내용(범위와 수준)을 놓고 큰 혼란이 발생하거나 각 기업에서 임의대로 작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이 조항을 둔 실익을 거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미 없는 보고서를 또 하나 만들게 되었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기업들 사이에 팽배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안전·보건에 관한 ‘계획’에 전년도 안전·보건활동 ‘실적’을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상위법개념·규범의 의미·내용을 구체화하는 한계를 명백히 벗어나 있다. 전년도 활동 ‘실적’이 필요하다면 법률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정석이다.

법개정의 취지와는 달리 이 조항으로 인해 대표이사의 책임이 강화되는 효과는 사실상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안전·보건계획의 보고·승인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벌칙이 있고 이행에 대해서는 벌칙이 없는데다가, 대표이사가 아닌 회사에 대해 그것도 형벌이 아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어 대표이사 개인에 대해서는 위하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의 책임을 강화할 생각이었으면 이런 규정을 둘 것이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체제의 구축·운영 위반에 대한 벌칙을 현행 과태료에서 형벌로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단단히 잘못 찾은 듯하다. 가뜩이나 부족한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신뢰감이 더욱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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