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근로자가 임신 중 업무로 인해 선천성 장애를 가진 자녀를 출산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태아의 건강 손상이나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포함된다고 판단한 최초 판례다.

대법원 2부는 제주의료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A씨 등 4명이 “요양 급여 신청을 반려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29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모두 제주의료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지난 2009년 임신하여 2010년에 아이를 출산했다. 이들이 출산한 아이들은 모두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다. A씨 뿐 아니라 당시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며 임신을 했었던 간호사들 중 5명은 유산을 하기도 했다.

제주의료원은 지난 2011년 노사합의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보고서는 다음해 제출됐다. A씨 등은 이를 토대로 “임신 초기에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며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A씨 등은 지난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A씨 등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주야간 교대근무 및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등과 같은 작업 환경상 유해 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됐다”며 “아이들의 선천성 심장 질환의 발병과 A씨 등의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산재보험급여수급권의 법적 성격 및 산재보험법의 규정 등을 종합하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사유로 생긴 태아의 건강 손상으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업무로 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 손상은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돼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해 요양 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가 상실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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