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단상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단상
  • 승인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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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근저에 강하게 깔려 있다. 약한 제재가 우리나라의 낮은 안전수준의 주범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보다 낮은 제재수준으로도 훌륭한 안전실적을 거두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을 보면, 이 주장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제재수준이 과연 낮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그간 법적 근거 없이 남발해 온 사업장 전체 작업중지명령까지를 감안하면 어느 나라보다도 제재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모델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을 꼽고 있다. 그런데 영국의 사망사고발생률이 크게 낮은 것이 법인과실치사법의 영향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영국은 법인과실치사법 제정 이전부터 사망사고발생률이 낮았던 것이지 이 법 제정 이후에 본격적으로 낮아진 것이 아니다. 감소폭으로 보면 오히려 이 법의 제정 이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산재예방제도에서 배워야 할 것은 강한 처벌수준만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이다. 두 가지를 다 같이 생각하지 않고 처벌수준만을 맥락 없이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파편적 접근이다. 수범자가 법을 잘 준수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은 소홀히 한 채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어렵다. 그리고 선진적인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처벌강화에 집중하는 것은 정부가 스스로의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수범자의 책임만 묻는 무책임한 처사이다. ‘엄벌주의’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영국에서 그간 법인과실치사법으로 처벌된 것은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대기업에 대한 처벌사례는 단 한 건뿐만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면 이 법의 실제 적용대상자는 대부분 중소기업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법의 준수여건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로 중소기업에 큰 타격을 입히는 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치주의의 관점에서는 처벌강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건조성 외에 구성요건의 정교한 규정이다. 구성요건상의 문언이 치밀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벌수준을 높이면, 수범자의 입장에서 어떠한 행위를 해야 하는지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과도한 처벌이 될 수 있다. 형벌권의 남용 또는 과도한 형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악이요,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준법의지가 강한 수범자조차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이를 안 지킨다고 처벌하는 것, 그것도 엄벌에 처하는 것은 국가에 의한 횡포이다. 그런데 안전분야에서는 진보, 보수에 관계없이 이러한 인권의식이 매우 희박하다. 그러다 보니 무작정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정의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의 구성요건이 허술하게 규정되어 있으면 소송으로 갈 경우 무죄로 판결되거나 솜방망이 처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허술한 구성요건하에서는 피의자를 엄벌에 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낡은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듯 반복되는 엄벌 주장이 공염불에 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술한 구성요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약한 처벌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형법학자인 리스트의 “최선의 형사정책은 사회정책이다”는 말은 산업안전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법언이다.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산업안전분야의 사회정책에 해당하는 산재예방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힘겹고 다소 더디지만 효과가 검증된 시스템 개혁을 우선할 것인가, 당장에는 달콤하지만 효과가 의심스러운 엄벌주의를 우선할 것인가.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의식한다면 선택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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