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 說

올해 초 정부는 전국 스쿨존의 안전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의 핵심은 스쿨존 내 차량 속도 제한을 강화하고, 교통안전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함과 동시에, 운전자 시야의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스쿨존 내 주·정차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3월 25일부터는 이른바 ‘민식이법’도 시행됐다. 지난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김민식 군의 사고 이후 발의된 이 법안에는 스쿨존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어린이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처럼 스쿨존에 대한 고강도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처벌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분명 박수를 받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보다 항구적인 관점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를 감소시키고자 한다면 한 가지 더 신경 써서 손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공동주택 단지 내 도로의 안전 문제다. 단지 내 도로는 일반도로 대비 어린이.노인 등 교통약자 사고율이 높기로 악명이 높다. 실제 지난 8일 경기 의왕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8살 이모군이 트럭에 치여 운명을 달리했으며, 앞서 2017년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단지 내 횡단보도를 건너던 6세 어린이와 어머니가 갑자기 돌진한 승용차에 치어 아이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중상을 입었다.

이 구역의 안전 취약성은 통계조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2019년 교통약자 연령별 보행사고율’을 살펴보면 공동주택 단지 내에서 발생한 보행사고는 60세 이상 노인의 경우 40.9%, 초등학생 40.8%, 미취학아동 30.5%로 집계됐다. 반면 일반도로에서는 60세 이상 노인 13.2%, 초등학생 14.8%, 미취학아동 5.8%로 확인됐다.

이처럼 끊임없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 마땅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다. 이 구역이 법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서다. 단지 내 도로는 현행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도로 외 구역’이다. 과속방지턱 등 교통안전시설 설치 의무가 없고, 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처벌의 수위가 일반도로에 비해 가볍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동주택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집밖’보다 ‘집안’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정부가 공동주택 관리 주체에 단지 내 도로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교통안전법 시행령.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개정안에는 단지 내에 ▲안전표지판 ▲과속방지턱 ▲시선유도봉 ▲도로반사경 ▲어린이 통학버스 정류장 표지 ▲보행자용 방호울타리 등 10종의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단지 내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자 또는 중상자가 발생하면 관할 지자체에 신고토록하고, 이곳의 교통안전에 대한 실태점검을 교통안전공단 등 전문기관에 위탁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관련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상태인 점을 고려할 때 쌍수를 들고 반길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완책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자율에 맡기다 보면, 관리주체의 역량에 따라 분명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이 나오기 때문이다. 안전 불평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서 공동주택 단지 내 도로의 안전을 스쿨존 수준으로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잊지 말자. 미래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최고 수준의 보호와 관리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어린이 교통사고는 감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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