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다’라는 주제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다’라는 주제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입법공청회’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관람객들이 몰린 상황에서 진행됐다. 청 설립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로 높은 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발제 내용과 토론의 질도 상당히 높았다는 평을 들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을 정리해봤다.

“산업안전보건청은
안전문화 조성 위한 행정적 기반”

◇전문성·특수성·독립성 등 보장 필요

‘왜 산업안전보건청인가’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정진우 교수는 산업안전보건청에 필요한 가치로 전문성, 효율성, 특수성, 독립성, 능동성을 꼽았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청은 우리나라에서 규제 기반의 안전문화가 자리잡는데 필수조건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우선 정 교수는 산업안전보건 영역에서는 전문화된 조직기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 교수는 “유해위험요인이 고도화·전문화·복잡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감독관의 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조직적 능력, 행정 시스템 개선 없이 외형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채용, 경력관리, 교육이 삼위일체로 전문화되어야 한다. 이는 산업안전보건청과 같은 조직적 기반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행정기관에 전문성이 있어야 정교하고, 내실 있는 사전 예방·지도가 가능하다”라며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문성이 전제돼야 면밀한 재해조사를 통해 사고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실효성 높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행정의 효율화를 위해서도 산업안전보건청은 필요하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산업안전보건행정도 다른 행정과 마찬가지로 재원과 인원이 제약되어 있는 상황에서 업무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효과적인 행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됨에 따라 고려해야할 변수가 많아졌고, 규제의 품질과 효율적 집행이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산업안전보건 규제 집행기관이 규제를 정교하고 효과적으로 제정해 운용하는 능력을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업무의 특수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진우 교수는 “산업안전보건업무에는 전기·화학·건축 등 공학적 지식과 자연과학, 의학, 사회과학이 융복합적으로 요구된다”라며 “고용노동부 내 다른 부서의 업무와 이질적이고 특수한 성질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는 “산업안전보건행정 조직의 인력은 채용 시부터 그 성격에 적합한 전문인력을 별도의 채널을 통해 확보하고, 채용 후에는 이들이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전문적 경력관리를 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업무에 요구되는 역량 확보를 위해 전문적인 교육훈련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독립성(자율성)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안전보건업무 담당자들과 관리자들의 전문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독립적인 인사구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산업안전보건업무 담당자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고, 관리자들 또한 산업안전보건업무에 대해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산업안전보건청에 필요한 가치로 능동성을 꼽았다. 산업안전보건관리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능동적인 행정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관리 업무는 일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문제가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정진우 교수는 “산업안전보건관리 업무 특성상 행정기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라며 “행정기관에서는 기업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산업안전보건관리를 적극 추진하도록 능동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관 인력 증원·기술직 비중 늘리는
인사행정은 한계 있어”


◇행정조직의 양적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아

정진우 교수는 안전문화 조성을 위한 행정적 기반이 산업안전보건청이라고 역설했다.
정 교수는 “현재의 행정조직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 환경과 요구에 적정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조직구조를 현 상태로 놓아둔 상태에서는 인력을 증원하거나 기술직의 비중을 늘리는 식의 인사행정만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의 안전문화 조성을 위해서는 산재예방 규제기관의 안전문화 조성이 필수불가결하다”라며 “산업안전보건청은 산재예방 규제기관의 안전문화 조성을 위한 조직적인 기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다만 산업안전보건청으로의 조직개편은 단순한 외형적 확대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기업의 예측가능성 확보와 자율적 재해예방능력 제고에 중점을 두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행정집행체계 개선과 병행돼야 조직개편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정 교수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주장이 고용노동부 내 산재예방담당국을 본부나 실 단위로 단순히 양적 확대하는 수단으로 오용되거나 변질되는 것은 청 설립 주장의 본질과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산재보험기금 운영방안 및
안전보건공단과의 역할도 재정립 필요”


◇취지는 공감하지만 문제는 디테일

이날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이들은 전반적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시기나 방법 등에서 의견이 갈렸다.

강태선 세명대 교수는 “국민안전 증진을 위해 이미 많은 정부조직이 전문성·독립성을 갖는 외청과 같은 독립규제기관 형태로 발전했는데, 연간 2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독립기관이 없다는 것은 불균형이며 차별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 강 교수는 “산업재해는 산업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안전과 직결된 사항이다”라며 “비단한 예로 대형 화재사고는 산업재해로부터 비롯됐거나 그 자체가 산업재해다”라고 말했다.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163명)는 노동자 2명이 가스폭발로 사망하면서 발생한 재해이며, 2008년과 2020년에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도 결국 산업재해 때문에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즉, 산업안전보건청이 설립돼 노동자 안전보건에 대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책임행정을 기하는 것만으로 화재안전, 교통안전 등 국민안전과 관련된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강 교수는 산업안전보건청은 기존 고용노동부의 고용서비스 중심에서 탈피해 산업안전보건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조직특성, 집무규정, 사업지침, 감사기준, 인사기준 등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총의 임우택 본부장도 현재 산업안전보건행정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임우택 본부장은 “지난 4월 경사노위에서 중장기적으로 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을 합의한 바 있다”라며 “처벌위주의 감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감독행정체계의 개편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임 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청이 설립된다고 해도 지금처럼 법준수 사항을 관행적으로 적발하는 감독행정이 유지된다면 감독행정의 조직만 방대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본부장은 “사고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 및 산재예방과 연계가 가능한 예방중심의 감독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라며 “산업별 작업특성을 고려한 안전규정을 별도로 마련하고, 해당 규정에 근거한 업종별 맞춤식 감독행정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재해 예방·보상·재활의
연계방안 고려해야”


◇안전보건과 노동조건을 연계해야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에 따라 산재보험기금의 운영방안 및 안전보건공단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노총 김광일 소장은 “산업안전보건청이라는 행정조직에 전문성과 효율성, 특수성, 독립성, 능동성이 필요하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논리적 타당성은 명료하다”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김 소장은 “발의된 입법안은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 5개 과와 지방고용관서에서 산업안전 및 보건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조직, 인력을 산업안전보건청으로 모두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라며 “이처럼 산재보상업무를 고용노동부에 남겨 둘 경우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도 산재보험기금과 예방사업의 유기적인 연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 기능이 외청으로 독립될 경우 산업재해 예방과 보상의 유기적인 시스템이 단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산업재해 예방기금의 경우 징수(고용노동부)와 집행(산업안전보건청)이 이원화되어 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취지와 다르게 예방사업에 즉시 예산이 투입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김 소장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과 관련해 안전보건공단의 기능과 존치 여부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면 산재보험기금의 산재예방 예산, 고용노동행정지원 예산 등의 편성이 불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문대 변호사도 김광일 소장과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산업안전보건청과 안전보건공단과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현재 공단이 기술지원 등을 통해 관리감독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이상 청 설립 시 공단과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의 산업안전영역에서는 플랫폼 종사자, 원하청 간 책임소재 문제 등 새로운 과제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어 정책집행보다는 정책수립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라며 “당장은 정책 부문을 강화할 필요성이 큰데, 이를 위해서는 ‘청’보다는 ‘부’에서 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재예방의 주체인 노동자,
노동조직의 참여 방안 마련돼야”


아울러 산업재해와 관련해서는 예방과 보상, 재활이 서로 연계돼야 하는데, 당장은 고용노동부에서 융합적으로 수행할 필요성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고용업무의 비중이 매우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산업안전보건 등 다른 업무는 부차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산업안전은 특화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추진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라며 “장기적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필요하지만 우려되는 사항들이 있는 만큼 시기와 요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산업재해 문제를 산업안전의 영역에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주노총 최명선 실장은 “산업안전보건청은 정부의 안전보건 감독체계가 구축된 지 수 십년 만에 감독행정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며 “입법발의가 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문제는 제출된 법안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외에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 실장은 ‘안전보건’과 ‘현장의 고용구조 등 제반 노동조건’을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명선 실장은 “산재 취약업종 중 하나로 운수업을 꼽을 수 있는데, 운수업 중대재해의 주요 원인은 장시간 노동이며 종사자 대부분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건, 고용형태의 문제와 안전보건을 분리한다면 사실상 상하차 작업 등 제한적인 영역에서 감독 등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최 실장은 “감독과 집행체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산재예방의 주요한 주체인 노동자, 노동조합의 참여를 어떻게 강화·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라며 “독일의 경우에는 산재예방에서 산재보험조합이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최 실장은 “독일 산재보험조합이나 유럽의 지역안전대표제도 등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보완하여 산업안전보건청 내의 주요한 조직체계 중 하나로 구조화하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