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고용노동부 산재예방행정조직에는 중대산업사고 예방을 위한 ‘공정안전관리(PSM)’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이하 ‘예방센터’)가 별도로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예방센터와 지방관서의 업무경계가 모호하여 사업장에 대한 감독(집무규정 제9조), 점검(집무규정 제18조)이 중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의 화재·폭발·누출사고 예방에 관한 규정(제2편 제2장)에 대해서는 지방관서에서도 감독을 하고 있지만 예방센터에서도 점검을 하고 있다. 예방센터에서 근거도 없이 소관업무도 아닌 사항에 대해 점검을 하고 있는 것인바,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 운영규정’(예규) 어디를 보더라도 예방센터가 독자적으로 동 규칙상의 화재·폭발·누출사고 예방규정을 점검할 권한은 부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지방관서는 예방센터의 존재로 인하여 화학사고 예방업무를 중대산업사고 여부에 관계없이 예방센터에 미루면서 화학사고 예방업무 전반에 대해 무관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설령 지방관서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화학사고 예방행정조직이 이원화되어 있어 하나의 사업장에 대해 감독(점검)이 종합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실시되지 않고 파편적이고 분절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결국 조직의 이원화가 화학사고 예방업무의 사각지대와 비효율적 감독(점검)을 초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중대산업사고 예방센터 운영규정’(예규)상의 중대산업사고에 대한 용어 정의가 산업안전보건법령상의 용어 정의와 많이 다르다. 법령(시행령 제43조 제3항)에서는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일정한 위험설비에서의 누출·화재·폭발사고 또는 인근 지역의 주민이 인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일정한 위험설비에서의 누출·화재·폭발사고”라고 정의하고 있는 반면에, 위 예규(제9조 표5)에서는 “대상설비, 대상물질, 사고유형, 피해정도 등이 모두 판단기준에 해당된 사고로 공정안전관리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정의하면서, 피해정도란 “근로자는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 인근지역 주민은 피해가 사업장을 넘어서 인근지역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자는 (근로자의) 사망 또는 부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전제로 한 정의이지만, 후자는 (근로자의) 사망 또는 부상이 실제 ‘발생한’ 것을 전제로 한 정의이다. 그러다 보니 예규에서는 중대산업사고와 별도로 ‘중대한 사고(또는 결함)’라는 법적 근거 없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법령과 예규 간의 개념 차이를 메우려고 하고 있지만, ‘중대한 사고(또는 결함)’에 대해서는 용어정의도 되어 있지 않는 등 현장에서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중대산업사고에 대한 국내 규정의 용어정의는 국제기준상의 용어 정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ILO 협약(ILO, 1993) Article 3(d)에서는 “주요 위험시설 내에서 작업활동 중에 발생하고, 하나 이상의 위험물질들로 인해 즉시 또는 시간이 지난 후 근로자, 인근주민 혹은 환경에 대해 심각한 위험을 가져오는 화재, 폭발, 누출과 같은 급작스러운 사고”라고 정의하여 ‘심각한 위험’을 가져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반면에, 국내 규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해하거나 위험한 설비로부터의 위험물질 누출, 화재, 폭발 등으로 인하여 사업장 내의 근로자에게 즉시 피해를 주거나 사업장 인근지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사고로서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위 설비에서의 누출·화재·폭발사고 또는 인근지역의 주민이 인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 설비에서의 누출·화재·폭발사고(법 제44조 제1항 및 시행령 제43조 제3항)”라고 규정하여 ‘경미한 피해’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관계로 중대산업사고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그 결과 화학사고 중 ‘중대’산업사고와 ‘일반’화학사고 간의 경계가 모호해져 중대산업사고를 별도로 개념정의한 당초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예측가능성이 없고 합리적이지 않은 공급자 위주의 규정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이행되기 어렵다는 교훈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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