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대.기아자동차의 단체협약에 따른 산재 유족 특별채용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자녀의 특별채용과는 달리,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 특별채용은 업무상 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보충하고, 유족을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결은 산재보상 범위를 기존보다 폭넓게 해석한 리딩 케이스(Leading case)로서 의미가 크다.

사실 현대.기아자동차의 산재 유족 특별채용이 화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현대자동차에서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들이 단체협약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소송은 유족의 고용보장에 대한 노사의 단체협약 조항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 다룬 첫 판결로 큰 이슈가 됐었다.

당시 재판부는 “산재 유족 자녀 특별채용이 단체협약에 규정할 수 있는 사항 및 교섭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를 단체협약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결국 일자리를 물려주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고 판시했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도 2013년과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산재 사망 노동자 특별채용이 기회균등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며 단체협약을 무효로 판단하고, 금전적 손해배상으로 유족에게 위자료 등 2400만 원 지급을 명령했다. 사용자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생계보상은 금전으로 이뤄지는 것이 합당하는 것이다.

또한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사용자가 부담할 업무상 재해보상의 책임을 보충하는 것으로 유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한 민법 제103조에 위배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민법 제103조의 ‘사회질서’라는 보편적인 원리가 노사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사용자가 산재보상에 대한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 ‘사회질서’에 부합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판결로 다른 기업에서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만들어 적용하는 사례를 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사가 합의를 통해 강구한 산재보상 대책이 효력을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앞으로 산재보상 관련 제도 또한 상당한 변화를 이룰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는 하루에 5명 이상이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다. 산재예방 정책만큼이나, 산재보상과 관련된 법령과 제도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산재보상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보다 강화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연대, 공정의 관점에서 산재보상 범위가 확대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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