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 의지는 뚜렷하지만 이견 상당해
건설업계, 제정 반대의견서 국회 등에 제출

지난 6월, 정의당은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의 관한 법률’(중대재해기업처벌법,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은 사업주가 유해·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정안 발의 이후 지난 9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힘을 쏟겠다고 언급하고, 11월에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순풍을 타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거대 양당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등 명확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어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서 최근의 움직임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봤다.

◇더불어민주당, 산안법 개정안 발의
11월 12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의무를 위반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 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이는 집권 여당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같은 당 장철민 의원이 지난달 16일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당내에서도 명확한 입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장 의원의 개정안은 사업주,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동시에 3명 이상 또는 1년 내 3명 이상 사망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시 최대 1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상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것에 비하면 분명 상향된 것이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산안법 개정 중 하나를 택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산안법 개정안, 중대재해법 대안 아냐
정의당과 노동계 등 일각에서는 장철민 의원의 산안법 개정안에 대해 “중대재해법보다 후퇴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SNS를 통해 “산안법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어 말씀드린다. 이 법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대안으로 나온 게 아니다”라며 “두 법은 모순되는 내용이 아니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법 또한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두 법 모두 입법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며 “상임위도 다르다. 산안법은 환노위, 중대재해법은 대표발의하신 박주민 의원님이 속한 법사위 법이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산안법과 중대재해법은 상호보완적”이라며 “중대재해법에서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산안법 등에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산안법이 더 꼼꼼하고 튼튼해져야 중대재해법이 제정됐을 때 더 빈틈없이 처벌할 수 있는 구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사위에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이 이뤄지기만을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이번 산안법 개정안은 중대재해법 입법과 무관하게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인의 노동자 영정을 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집중 집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 뉴시스)
민주노총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인의 노동자 영정을 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집중 집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 뉴시스)

 

◇이낙연 “중대재해법 당론 아니어도 된다”
논란이 이어지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7일 “중대재해법과 관련해서 오락가락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중대재해법, 공정경제3법을 이번에 처리한다는 원칙을 갖고 상임위원회에 위임하겠다고 했고, 그 원칙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의당 등에서 중대재해법 당론화를 요구하는 데 대해선 “당론이냐 아니냐를 쟁점에 두는데, 과거 정당의 틀로 보면 안된다. 민주당의 당론 법안은 일하는 국회법과 5·18 관련 2개 법 등 3개”라며 “당론이 아니라고 안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덧붙여 “중대재해법은 하나의 법안만 나와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의견이 다른, 쟁점이 포함된 몇 개의 법안이 나와 있고 어차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정도 하지 않고 이게 당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경직된 자세”라며 “중대재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제정에 찬성한다. 내용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산안법 개정안은 산재공화국 방치법”
정의당은 지난달 17일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재해법 당론화 요구를 일축한 것을 맹비난하며 당론 채택을 촉구했다. 민주당이 대안으로 추진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해선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은 산재공화국을 방치하는 산안법 개정을 중단하고, 중대재해법 제정을 당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 원내대표는 산안법에 대해 “지난 5년 동안 산안법 관련 피고인들의 평균 징역 기간은 10.9개월에 불과했고, 5년간 평균 벌금액도 자연인은 420만6600원, 법인은 447만9500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통한 산업재해 예방 조치라는 알맹이를 빼놓은 상태에서는 산업안전에 대한 어떤 대책도 면피용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꼼수 안을 철회하고, 정의당 제정안을 중심으로 즉각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 지도부가 끝내 당론 결정을 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당원 총투표로 당론을 결정하라”며 “당론으로 결정하겠다는 지도부의 결단과 용기가 없다면, 당원 총투표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사진 제공: 뉴시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뉴시스)


◇김용균母 “왜 사람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숨진 하청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이사장(김용균재단)은 정의당과 함께 중대재해법 처리를 호소하며 더불어민주당의 당론 채택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아들의 2주기가 다가오는데 아직 합의안이 이행도 안 된 것을 보면 속이 터진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것은 이 죽음을 막자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라고 토로했다.

또 김 이사장은 “정말 분통이 터진다. 아픔을 감내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유족이 나서서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라며 “정치인과 정부가 나몰라라 하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중대재해법은 기업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기업 스스로가 안전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노동자들의 끝없는 죽음의 행렬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은 바로 우리 국회이고, 우리 정치”라면서 “이 법 통과를 주저하고, 이 법에 조건을 달고, 이 법에 우려를 표명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공범 행위나 다름없다”고 거들었다.


◇민주당 “중대재해법 반드시 추진”…연내 처리 불발될 듯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방침을 분명히 했다. 다만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법안의 취지는 살리되 법의 명칭이나 세부안에 대해선 소관 상임위원회 논의를 통해 조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달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중대재해법은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는 법안”이라며 “관련법과의 정합성, 법적 완결성 등은 법사위원회가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그러나 중대한 재해를 예방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신은 양보해선 안 된다”며 “법 이름에 예방을 넣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원칙을 지키며 법안을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올해 정기국회는 이 시대의 국가적 과제를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며 민주당의 미래입법과제 10가지를 선정했다. 이중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포함돼 있다.

다만, 중대재해법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법은 분명히 처리한다”며 “그러나 제정법은 국회법상 제정법에 맞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지만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당과 노동·시민사회계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당초 중대재해법 제정에 힘쓰겠다고 했다가 산안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연내 처리가 힘들다는 표명까지 발표하는 등 입장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중대재해법, 과대한 책임·처벌에만 초점 맞춘 과잉입법”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10월 중대재해법에 대한 반대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데 이어 이번에는 건설업계에서도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사업주가 지킬 수 없는 과도한 책임과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과잉입법이라는 것이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건단련)는 강은미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에 제출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건단련은 “아파트 현장의 경우 인력이 많이 투입될 때는 하루에 1000~2000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개별 현장의 안전을 직접 챙기는 것이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에도 이러한 사정을 고려치 않고 폭넓은 유해·위험방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라며 “포괄적·추상적 의무를 부과할 경우 어떠한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등 의무의 범위를 예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법안은 기업과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처벌에만 집중하고 있어 건설업계의 우려가 매우 큰 상황이라는 게 건단련의 주장이다.

건단련의 한 관계자는 “사망사고를 줄이고자 하는 법안 제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업까지 처벌받게 될 가능성이 커 기업 경영환경이 매우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총이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입장이 나왔다.

지난 2일 개최된 ‘산재예방 선진화를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서승원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안전강화에 대한 중요성은 중소기업계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지나치게 사업주 책임과 처벌을 강조해 과잉입법 논란이 크다”고 주장했다.

서 부회장은 “특히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주로 처벌대상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원인을 차단하는 예방 중심의 정책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사망사고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안전정책을 사전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은 전부 개정 산안법의 적용상황을 중장기적으로 평가한 이후에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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