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폭발·질식·붕괴·매몰 등 각종 人災로 얼룩진 2020년

올해 우리 안전보건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대폭 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본격 시행됐다. 안전 선진국 대한민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최소한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공감대도 사회 전반에 널리 확산됐다. 국민의 안전 및 생명을 보호하는 각종 법안들이 수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 속속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노력과 기대에 비해 아쉬움도 큰 해였다. 여전히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가족의 소중한 구성원인 수많은 노동자들이 올해 발생한 대형 화재참사와 각종 안전사고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까닭이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도 코앞이다. 올해 발생한 각종 재해를 반면교사 삼아 다가오는 새해에는 반드시 안전 선진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올해 발생한 주요 안전사고를 정리해 봤다.

과거의 대형화재, 올해 똑같이 되풀이
부실한 안전관리, 미흡한 안전의식 여전

 

1. 인천 송도 타워크레인 전도사고…3명 사상
새해를 시작하며, 많은 이들이 올해만큼은 안전 선진국을 향한 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졌지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점쳐졌다. 새해 벽두부터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1월 3일 오전 8시 32분께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한 절삭공구 제조업체의 사옥 신축공사 현장에서 해체 작업 중인 타워크레인이 전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작업 중이던 노동자 A씨와 B씨가 30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으며, 다른 작업자인 C씨는 팔을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인재(人災)인 것으로 확인됐다.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 과정에서 부품 해체 순서 등이 적힌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이번 사고는 정부가 타워크레인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진 제공 : 뉴시스



2. 양주 가죽공장 화재·폭발로 12명 사상
1월 31일 오전 11시 24분께 양주시 광적면 가죽가공업체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2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입는 피해가 발생했다. 폭발의 규모는 상당했다. 사망자 2명은 현장에서 20m가량 떨어진 건물 내에서 발견됐으며, 공장 6개동 중 2개동이 완파됐고, 인근 공장에 균열 및 유리창 파손, 붕괴 등 소방서 추산 2억 2284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관계기관의 합동감식 결과, 사고 원인은 보일러 내부 압력 상승으로 인해 안전밸브가 파손되면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허나 정확한 폭발 원인은 미상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면 보일러 잔해가 필요한데 폭발의 위력이 워낙 컸던 탓에 보일러가 유실, 원인규명이 어려웠다. 한편 경찰은 이곳에서 평소 보일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전반적인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 : 뉴시스



3. 부산 단독주택 리모델링 중 작업자 매몰…5명 사상
2월 21일 오전 11시 4분께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서 리모델링 중이던 2층 단독주택이 무너져 작업자 5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총 8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었는데 3명은 건물 붕괴와 함께 긴급 대피했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나머지 5명은 건물잔해에 깔렸다. 소방당국은 긴급히 출동해 오전 11시 35분께 A씨와 B씨를, 사고발생 3시간 만인 오후 1시 50분께 C씨를 구조했다. 이들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오후 3시 15분, 40분께 구조된 D씨와 E씨는 결국 숨졌다. 참고로 이 주택은 1973년 관할 구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제공 : 뉴시스

 


4. 충남 서산 화학공장서 화재, 56명 부상
3월 4일 오전 3시께 충남 서산시에 소재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폭발의 규모는 수십km 떨어진 당진과 태안주민들이 흔들림을 감지할 정도로 컸다. 이 사고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LG화학, 한화토탈 직원 12명, 인근 주민 44명 등 총 56명이 부상을 입었고, 전체 공장 13개 시설 중 9개가 가동이 중단됐다.
이번 사고는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제조하는 나프타 분해 센터의 압축공정 배관에서 발생한 폭발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사고 이후 감독당국인 고용노동부도 특별감독 등 즉각적인 조치에 나섰다. 대산공장 전체 공정을 대상으로 이뤄진 특별감독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 총 81건이 적발돼 책임자·법인 등이 형사 입건되고, 과태료 5억여 원이 부과됐다. 이번 사례는 단 한 건의 안전사고라도 기업에게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실제 일부 시설이 재가동 되지 못해 기업이 떠안은 손해는 약 2000억 원으로 추정됐다. 아울러 사고 이후 많은 화학기업들이 각 공장의 공정안전관리 실태를 살피고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 제공 : 뉴시스

 


5. WHO,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 선언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1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속출하자 세계적인 대유행을 의미하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팬데믹이 선포된 것은 지난 1968년 홍콩 독감,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에 이어 세 번째다. WHO는 감염병 경보를 크게 6단계로 분류하는데, 팬데믹은 이 가운데 최고 위험 등급을 지칭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1단계(동물에 한정된 감염) ▲2단계(동물 간 감염을 넘어 소수의 사람에게 감염) ▲3단계(사람 간의 전염이 늘어나는 상태) ▲4단계(사람 간 전염이 급속 확산돼 세계적인 유행병이 될 수 있는 초기상태) ▲5단계(감염병이 2개국에서 유행하는 상태) ▲6단계(감염병이 2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태) 등이다.
코로나19로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약 7400만 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했고, 약 16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확진자 및 사망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코로나19는 산업현장 안전보건 분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취약계층의 감염병 확진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안전보건의 불평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고, 학계를 중심으로 기존의 안전보건 패러다임을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사진 제공 : 뉴시스

 


6. 부산 하수도 공사현장 질식사고, 3명 사망
보이지 않는 위험, 질식사고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인 ‘구조 중 사망’이 되풀이되는 사고도 있었다. 4월 9일 오후 3시 20분경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서 깊이 4m, 지름 2m의 하수도 공사장 맨홀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3명이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와 경찰에 따르면 노동자 한 명이 철근 용접작업을 하던 중 폭발음이 발생했고, 나머지 두 명이 이를 확인하러 갔다가 모두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현장 맨홀 내에서는 황화수소와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 유독가스가 검출됐으며, 특히 일산화탄소는 최대 허용치 50ppm의 20배에 이르는 999ppm 이상으로 측정됐다. 또한 공사현장에서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야 하는 안전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즉 작업 전 밀폐공간 작업안전수칙에 대한 안전교육과 개인용 호흡기 보호장비 지급 등의 조치가 적절히 이뤄졌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기록됐다.

사진 제공 : 뉴시스

 


7. 과거를 되풀이한 人災…이천 물류센터 화재
과거의 대형 화재참사를 ‘똑같이’ 되풀이 한 어처구니없는 화재사고도 있었다.
4월 29일 이천시 모가면에 소재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무려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1시 32분께 냉동·냉장 물류창고 신축현장 지하 2층 배관 용접작업 중 발생한 불꽃은 천장 우레탄 폼으로 옮겨 붙으면서 삽시간에 번졌다.
이번 화재사고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원인으로는 공정 전반에서 안전관리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점이 지목됐다. 공기 단축을 위해 평소보다 두 배가량 많은 인원이 투입된 것은 물론 화재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산소용접 작업 시 별다른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비상유도등, 간이 피난 유도선 등 임시 소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았고, 비상경보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아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이 화재를 조기에 인지하지 못했다. 이밖에도 방화문 설치 공간이 벽돌로 폐쇄돼 대피로가 차단됐으며, 화재 예방이나 비상대피교육 등이 실시되지 않는 등 전반적인 안전관리가 소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이 참사를 계기로 ▲무리한 공기 단축 시 형사처벌 ▲작업 중 안전조치 대폭 강화 ▲건축자재 안전기준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이 수립됐다. 아울러 건설참여자의 건설 단계별 안전책무 분담을 골자로 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사진 제공 : 뉴시스

 


8. 인천 화학제품 공장서 탱크로리 폭발로 9명 사상
한순간의 실수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화학사고도 발생했다. 7월 21일 오후 8시 51분쯤 인천시 서구 가좌동 화학제품 생산공장 내 탱크로리 차량에서 폭발이 발생해 근로자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또 탱크로리 인근 지상 2층 규모의 공장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조사 결과 이번 사고는 공장 내 과산화수소를 넣는 저장소에 잘못 주입한 수산화나트륨을 탱크로리 차량에 연결된 호스를 이용해 다시 빼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이 발생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일반적으로 화학사고의 주요 원인은 작업자 부주의, 미흡한 안전교육·훈련 등이 지목된다. 즉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인 셈이다.
사전에 작업자에게 화학물질에 대한 지속적인 안전교육과 훈련, 세심한 관리·감독이 이뤄졌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큰 사례로 남았다.

사진 제공 : 뉴시스

 


9. 강원 영월서 교량 철거 중 붕괴…5명 사상
안전을 위해 노후 교량을 철거하다가 상판이 붕괴돼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9월 14일 오후 2시 15분께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에서 노후 교량인 상동교를 철거하던 중 교량 상판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교량 하부에서 작업 중이던 A씨가 상판에 깔려 매몰됐다. 또 당시 상부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4명도 상판이 무너져 교량 밑으로 추락했다. A씨는 사고 발생 2시간여 만에 구조됐으나 숨졌고, 교량 밑으로 추락한 노동자 4명은 부상을 당했다. 사고가 일어난 상동교는 길이 45m, 폭 6m의 노후 교량으로 지난 2018년 안전 등급 D등급을 받아 이날 임시 가교 설치 후 해체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해체 작업은 교량 상부에서 5등분으로 자른 상판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뒤 하부에 내려놓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상판이 한쪽으로 무너져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됐다.

사진 제공 : 뉴시스

 


10. 울산 주상복합 아파트 화재, 93명 부상
철저한 대비와 매뉴얼에 따른 대처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화재사고도 있었다. 10월 8일 오후 11시 7분께 울산 남구 달동에 소재한 33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건물 3층 야외 테라스에서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 불은 강풍으로 건물 외장재에 옮겨 붙어 삽시간에 건물 전체에 번졌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후 5분 만에 4대의 소방헬기와 1300명의 소방인력을 투입하는 등 신속한 대응에 나섰고, 주민들은 소방대원들의 지시에 따라 서로 도우면서 안전계단을 통해 대피하는 등 매뉴얼대로 행동했다. 그 결과 대피과정에서 93명의 부상자만 나왔을 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화재사고를 계기로 고층 건물 화재 진압에 필요한 고가사다리차가 전국에 10대뿐인 것으로 드러나, 부족한 소방장비 실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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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광양제철소 폭발사고…작업자 3명 사망
예년에 발생한 유사한 화재·폭발사고가 되풀이되기도 했다. 11월 24일 오후 4시 2분께 포스코 광양제철소 1고로 지역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해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숨졌다.
합동감식 결과 이날 사고는 산소 공급용 배관 밸브를 조작하던 과정에서 고압 산소가 새어나오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작업자들은 내년에 해체·교체키로 한 노후 설비와 연결된 고압산소 배관 안에 차단판을 설치하는 작업 중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사고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이곳 광양제철소에서 11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24일에도 유사한 화재·폭발 사고가 발생해 5명이 다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는 광양제철소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했으며, 포스코는 향후 3년간 1조원을 투자해 위험·노후 설비 인프라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안전사고 재발방지 특별 대책 방안을 발표했다. 또 안전관리 요원을 기존 300명에서 600명으로 늘리고 철강부문장을 단장으로 한 ‘비상안전방재 개선단’도 운영키로 했다.

사진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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