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책임·처벌 낮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정안 국회 제출
정부, 책임·처벌 낮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정안 국회 제출
  • 정태영 기자
  • 승인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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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산업재해 줄지 않는 이유 알겠다”
백혜련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 위원장(왼쪽)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혜련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 위원장(왼쪽)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를 중심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미 발의된 법안들에 비해 처벌 수준이 낮고, 적용 유예 대상은 확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앞으로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 관계부처 의견을 취합해 중대재해법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형사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1월부터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사회적 이목을 끄는 중대재해가 반복되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중대재해법 제정 목소리가 나왔고, 여야 의원들이 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박범계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제정안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제정안 등 5건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 논의 결과, 발의된 법안에 대한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지적된 내용을 반영한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이렇게 제출된 정부안은 기존 제정안에 비해 대폭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중대재해 발생 책임 수위가 낮아졌다. 원안은 건설공사 발주처에도 안전의무를 지우고 있는데, 정부는 발주만으로 안전보건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과잉이라며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원청의 책임도 줄어들었다. 원안은 사업주나 법인 등이 제3자에게 임대·용역·도급 등을 한 경우 안전보건 조치의 공동의무를 지우도록 했는데, 정부안은 ‘원청이 시설, 설비 등을 소유하거나 그 장소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민주노총 “장기판에서 차, 포, 마, 상 떼어낸 격”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 수준도 낮아졌다.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의 벌금’에 처한다는 원안과 비교해 정부안은 ‘2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바꿔 벌금 하한선을 대폭 낮추고 상한선을 뒀다.

적용 유예 대상은 더욱 확대됐다. 원안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4년 유예한다’는 부칙을 100인 이상 사업장은 공포 후 1년, 50~100인 사업장은 공포 후 2년,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4년의 유예기간을 주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중대재해법의 핵심 쟁점이자 위헌 소지가 있었던 ‘인과관계 추정’은 정부안에서 아예 삭제됐다. 원안에서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와 사고 원인 규명, 진상조사, 수사 등을 방해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토록 했다.


◇각계의 반대 목소리 이어져

중대재해법 정부안에 대해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중대재해를 근절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가.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면탈, 인과관계 추정의 삭제 등 핵심이 빠진 누더기 법안으로 정말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장기판에서 차 떼고, 포 떼고 그것도 모자라 상도 떼고, 마도 떼고 심지어 졸도 한 두개 떼어내면 장기는 무엇으로 두는가”라며 “중대재해기업 ‘면제법’이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같은 날 정의당은 정부 수정안을 ‘개악(改惡)’이라고 규정하며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만들자고 했더니 중대재해기업 ‘보호법’을 가져온 셈”이라며 “왜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산업재해가 줄지 않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재해의 60% 정도가 발생하는데, 이런 사업장에 적용을 4년 유예하는 것도 모자라 50~99인 사업장도 2년 유예를 했다”라며 “원청책임도 약화, 처벌도 완화, 징벌적 손해배상도 약화”라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정부 수정안은 면피용에 불과하다.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는 수많은 목소리는 뒤로하고 재계의 이해관계를 적극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경총 “기업에 가혹한 징벌, 공포스러운 법안”


중대재해법 제정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던 경총은 정부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용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지난달 29일 중대재해법 정부안의 심사를 위해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해 “중대재해법은 기업이 지킬 수 없는 것에 가혹한 징벌을 가하는 공포스러운 법안”이라며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바로 처벌과 연계되는 구조로 설계돼 있어, 사고발생 시 필연적으로 경영책임자 및 원청이 2년 이상의 징역형 등 중대한 처벌대상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안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평등원칙,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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