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은 우리나라 안전보건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노동계는 ‘부족하다’, 경영계는 ‘과잉 입법이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등 모두가 만족하지 않는 상황이다.
중대재해법의 제정을 주도한 시민단체인 노동건강연대 역시 ‘법 제정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한편, 한계가 명확한 법을 개정하고 집행과정을 감시·비판하는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는 논평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중대재해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중대재해법 제정 과정과 의미, 앞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숙제에 대해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에게 들어봤다.
김명희 집행위원은 역학을 전공한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약 20여년 동안 노동건강연대에 몸담으며, 안전보건 관련 연구 및 자문, 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회의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인터뷰로 이하 내용은 노동건강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예방의학 전문의)

Q. 중대재해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했습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오랫동안 법 제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계기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중대재해법이 지난해 6월 국회에 발의되고, 6개월여만에 통과됐지만 사실은 약 20여년 동안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2003년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기업살인법팀을 조직하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기업살인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법안 자체에 대한 논의로는 18년 만에 제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을 시작했는지에 대해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산업재해 문제는 사회적 공론화가 되지 못했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문제가 있구나. 해결해야 겠구나’라는 인식이 생겨야 합니다. 헌데 산업재해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경제성장기 개발주의 담론이 국가, 사회, 개인을 지배하면서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는 문제는 그야말로 부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안전, 생명은 중요하지만 당장의 일자리,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시됐습니다. 심지어는 산업재해를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거나, 많은 경우에는 노동자 개인이 잘못해서 발생했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노동자의 죽음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사회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원진레이온 사고,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산업재해는 사회문제로 공론화되지 못했습니다. 사회문제로 인식돼야 그 다음 단계에서 분석을 하든지, 해결방안을 강구하든지 할 텐데, 첫 단추가 채워지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 IMF를 거치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분절화가 발생하면서 일자리와 임금 문제가 더더욱 중요한 사항이 됐습니다.

여기에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조합 조직률도 1989년 19.8%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10% 안팎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는 12.5%에 불과합니다. 노조조직률이 90% 이상이라면 노동자 안전보건 문제가 바로 사회적 의제가 될 수 있겠지만 다수의 소규모.영세 사업장, 혹은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사업장의 산재문제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것입니다.

지난 2001년 노동건강연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창립,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 여성.이주노동자 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산재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산업재해를 공론화하고, 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산업재해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설명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노동건강연대는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이슈파이팅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2006년부터 다른 단체들과 함께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일종의 네이밍 쉐이밍(naming&shaming, 공개적인 비행폭로) 전략도 펼쳤지만 생각만큼의 효과는 없었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살인기업 명단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산업재해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환영철강 용광로 쇳물사고, 여수산단 폭발사고(17명 사상) 등의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반올림 운동이 언론에 크게 노출되고, 특히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하면서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고, 변화가 있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들 사고는 기업의 태만이나 불법행위에 의해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죽고 다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인식변화는 안전보건에 대한 시민운동의 활성화로 나타났습니다. 2006년 처음에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 캠페인을 할 때에는 6개 단체가 함께 했는데, 2015년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에 22개 단체가 같이했고, 지난해에는 250여개 단체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노동과 시민운동이 함께 하게 되면서 프레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구의역 사고를 들 수 있습니다. 구의역 사고 희생자인 김군을 애도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고 현장을 찾아 추모 글을 적어 포스트잇을 붙이고, 헌화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던 예전과 달리 원청, 심지어 서울메트로까지 수사를 받게 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압력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습니다.

김용균씨의 사망사고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에 기폭제가 된 것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노동계, 시민단체에 더해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과 같은 유가족들도 적극 나서면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이제는 시민들이 직접행동을 보여주는 사회적인 풍토가 형성됐던 것입니다.

그 결과 ‘산업재해가 사회문제고, 원청에 책임이 있다’라는 인식이 대중적인 언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Q. 중대재해법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나 노동계, 많은 시민단체에서 법안이 충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는 사실 자체만 보면 ‘노동.시민운동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낸 것이다’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법안이 충분하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지난해 6월, 법안이 발의됐을 때로 시간을 되돌려보면 그때는 제정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고(故) 노회찬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을 때에도 별다른 논의 없이 폐기된 사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정당정치의 한계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중대재해법을 협상 카드로 산업안전보건법이라도 개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가 노동.시민사회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이지요. 어쨌든 법이 제정됐다는 사실 자체는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Q.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법취지가 무엇이냐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산재라는 것이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반기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이렇게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상도 못하는 시기에 상상도 못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혹은 사업을 운영하는 동안 단 한 번의 산업재해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제적인 선택은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바라며, 별다른 투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10년에 한 번 사망사고가 날까 말까한 상황에서 투자를 안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산재가 나면 산안법에 따라 처벌받고, 과태료를 내면 그만입니다. 재해율, 사망만일율이라는 통계를 보면 절대적인 수치로는 발생률이낮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지금까지는 안전보건을 위해 인력을 채용하고, 비용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그동안 우리사회에 지속돼 왔다는 것을 부인하실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중대재해법은 이런 인식을 타파할 수 있는 법입니다. 더 정확히는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벌칙 비용’과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 비용’ 사이의 균형점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상징성만 가진 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중대재해법 가운데, 잘된 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를 포함하여 종사자까지 보호하는 등 일하는 사람을 광범위하게 포함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중대재해의 범위에 사망재해 뿐만 아니라 부상, 직업병까지 포함된 것,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하여 시민의 안전까지 포괄한 것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벌칙 조항에 하한형이 도입된 것도 일정부분은 입법 취지를 살린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각에서는 ‘원청에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여했으니 소규모 사업장이 완전히 제외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런 프레임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필요(needs)가 더 큰 이들에게 더 큰 보호를 제공한다는 사회보장 제도의 기본적인 원리를 무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산업재해의 80% 정도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들 사업장을 법적 대상에 반드시 포함해야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 아닙니까. 정부가 소득보장정책을 시행할 때 소득파악이 어렵다고 최하위계층은 제외하고, 소득 자료가 충실한 중산층에게 지원한다고 발표한다면 어떤 평가가 나오겠습니까.

영국에서 공장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 법적 보호 대상은 어린이였습니다. 집행하기 쉬워서가 아니라 가장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헌데 안전보건과 관련된 제도에서 우리나라는 집행하기 쉬운 것부터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산재보험법이 500인 이상, 300인 이상, 100인 이상, 1인 자영업자 순으로 범위를 확대한 것처럼 말이죠.

물론,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인 미만,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약 260만개에 달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규제를 집행하는 것이 어렵지요.

공급자 입장에서 본다면 50인 미만을 유예하고, 5인 미만을 제외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만 뒤집어서 ‘인권과 건강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안전보건에 대한 여력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법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들 사업장을 당장 내일부터 법적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중대재해법의 대상이 확대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수준이 대기업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정부가 5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실효성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위 인권과 사람중심의 사회정책이 아닐까요.


Q.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의 보완입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경영계 측의 입장은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말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말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면 경영계 측에서 요구하는 있는 보완 사항들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주 등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구체화 및 매뉴얼 개발, 반복적 사망 시에만 중대재해법 적용, 안전관리전문가 채용 지원 등을 건의하고 있는데, 저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왜 이런 요구들을 하지 않았는지 말이죠.

그리고 중대재해법에서 고쳐야할 부분이 있다고 하면 이해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여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합니다. 특정단체와 특정 정당이 모여 대화를 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공감도 얻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대화 방법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아울러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 등 일반 공중의 안전까지 챙기는 법입니다. 노동과 자본만의 싸움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중대재해법을 반쪽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Q.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한 순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중대재해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시점부터 중대재해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중대재해법을 제대로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통법규 하나만 바뀌어도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집니다. 범칙금이 얼마로 올랐다는 식으로 말이죠. 중대재해법도 그 내용을 제대로 알고 준수할 수 있도록, 그리고 오해가 없도록 대대적으로 홍보해 나가야 합니다. 

아울러 법 준수 풍토를 조성해 나갈 필요도 있습니다. 제가 해외 연구자들, 실무자들을 만나면 종종 ‘정말 그 법.제도를 다 준수하고 있느냐’라고 질문을 합니다. 현장 작동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 했던 질문인데, ‘무엇을 물어보는지 질문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법은 법대로 있는 것이고 100% 준수하지 않거나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이행하지 않는 경우, 심지어는 의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에 익숙한 저와 법을 준수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해외 연구자들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법은 있되 실제 이행하지 않는 관행들에 대해 제 자신도 익숙해져 있던 것입니다.

중대재해법은 절대 똑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됩니다. 우선은 사람의 생명이 귀하고, 존엄하다는 인식을 자리잡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중대재해법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도록 사업장 스스로 노력하고, 정부에서는 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엄격히 처벌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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