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윤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 안전담당자

연구실험실의 경우 새로운 물질을 창출하기 위해 검증이 안 된 물리ㆍ화학적 위험물질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연구원들은 어느 직종보다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사회의 발전과 함께 각종 연구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와 맞물려 연구실험실 안전사고도 2006년도에 14건에서 2007년 27건, 2008년 70건, 2009년 55건(8월 기준)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이제 더 이상 연구실험실의 안전문제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양한 연구 환경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에 맞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필수. 하지만 우리나라 연구실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본지는 연구실 안전에 있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의 박재윤 안전담당자를 만나, 연구실 안전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눠봤다.

Q. 연구실 안전만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연구실험실에서는 각 분야마다 차이점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가연성가스나 인화성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사고, 전기누전과 화기사용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사고, 안전수칙 미준수 등 안전관리 부실로 인한 안전사고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소에서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신소재의 개발 및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그 연구의 안전성을 모두 확보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가지 과제를 위해 5~6가지의 화학물질을 가지고 실험을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 다음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그 물질에 검증이 안 된 또 다른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사실 안전관리를 하는 우리는 물론 연구자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해당 연구원들이 한 가지 과제만을 평생 수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위와 같은 사이클을 다시금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다양하고 불확실한 위험요인이 어느 업종보다 많은 것이 연구실험실이라는 것입니다.


Q. 우리나라 연구실 안전의 현 실태를 말해주신다면?

불과 4~5년전까지만 해도 연구실험실은 안전에 대해서 만큼은 사각지대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연구원들의 안전의식은 물론 연구에 대한 표준공정과 표준관리체계도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연구 활동이 활발해지고 여기에 비례해 연구실험실 사고가 많이 발생하자, 정부는 물론 각계에서 연구실 안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각 연구실 안전담당자들도 안전관리 개선계획을 만들고, 법률적으로 정해져있는 규정에 근거하여 연구소의 실태를 체크하고 개선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적으로 안전관리 체계를 바로 잡아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바탕에서 개별적인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지난 2006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하 연구실안전법)’을 제정하면서 연구실험실의 안전도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일반 제조업, 건설업 위주로 되어 있고, 범위도 너무 넓다는 점에서 연구실험실에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었는데, 연구실안전법이 제정되면서 보다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정책들이 많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연구실안전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연구과제에서 인건비의 일정부문에 해당하는 금액을 안전관리비로 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연구실험실 입장에서 보면 안전업무를 추진하는데 있어 굉장한 힘이 됐습니다.

그렇게 확보된 예산으로 안전계획이 신속히 추진되고, 시설이 개선되고, 또 전문기관의 진단 및 점검 등을 받다보니 4~5년 동안 연구환경은 급격히 좋아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볼 때 아직 연구실 안전은 가야할 길이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전체적인 틀은 겨우 갖춰졌지만, 아직까지도 세부적으로 보완, 개선해야 할 점도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보다 사업장의 안전의식, 그리고 연구 종사자들에 대한 안전의식을 확립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구실 안전에 대한 표준 관리 매뉴얼 등을 현장에 하루 빨리 정착 시켜나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Q. 연구실안전을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연구실안전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신다면?

 

궁극적인 연구실 안전을 위해서는 정부, 기관, 안전관리조직, 연구자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정부는 고급 과학기술인력의 보호차원에서 연구실 안전관리 정책을 개발하고 지원하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고, 기관장들은 연구자들의 사기진작과 연구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다는 측면에서라도 안전하고 쾌적한 연구실환경을 조성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안전관리 조직은 안전이 직원의 최대 복지임을 자각하여 안전예방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연구자는 안전이 개인의 가장 큰 행복임을 자각하여 안전의식을 갖추고 안전문화를 생활화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 중 하나라도 소홀해지면 안전관리는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이 4가지 축이 적절히 맞아 떨어져야 그 조직의 안전관리도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위의 질문과 관련해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점이 있으시다면?

정부에 연구실험실 안전을 위해 크게 3가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먼저 연구실 안전에 대한 정부의 조직을 강화시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전의 경우 출연연구기관의 경우 모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총괄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기초과학의 경우 교육과학기술부, 그리고 산업체 연구기관의 경우 지식경제부 소속으로 각각 나눠져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도 현재는 지식경제부 소속으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소의 경우 지식경제부 소속이라고 해도 안전에 관해서는 교과부의 지원과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연구실 안전 등을 담당하는 조직이 교육과학기술부에는 있고, 지식경제부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전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어느 기관의 관리를 받던 큰 차이는 없지만, 업무의 효율적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조속히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의 안전관리 전담부서도 지난해에 보니깐 조직과 인원의 규모가 많이 축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부처에서 연구실 안전관리에 관심을 가진지는 몇 년 안 됩니다. 선진국들을 따라잡으려면 자율적인 안전문화의 체계를 갖출 때까지는 지원과 통제를 강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담당 조직도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으로는 정부기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구실험실들을 관리해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연구실험실의 시설개선에 대한 정부의 투자 부분입니다. 요즘 지어진 연구시설의 경우 설계단계부터 연구 환경에 맞게끔 설계되어 있지만, 대부분 연구소들은 20~30년된 일반 건물을 실험실로 지정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구실험실 환경에 맞게끔 주기적으로 많은 부분을 개선해나가야 하는데, 비용적인 부담으로 인해 그 개선이 부분적으로만 이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 실험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구비해놓고 있는 연구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지금도 정부에서는 시설개선에 대해서는 조금씩 지원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연구실 환경 전체를 개선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시설개선을 위한 투자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같은 공공기관 연구소의 경우 정책적으로 경영평가항목에 안전관리이행실태를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공기관의 경우 경영평가에 포함이 안되어 있으면 그 분야는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평가항목에 포함되어 있는 분야는 CEO들이 신경을 조금이라도 더 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와 같은 공공기관이 안전관리 업무를 꾸준히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관평가 항목에 안전을 반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최근 안전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전교육을 진행하다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안전의식 부분입니다. 10시간, 20시간 동안 교육을 시켜도 의식이 기본적으로 안되어 있다 보니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기초적인 안전의식 교육을 시행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즉, 안전교육 자체는 학교교육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어느 사업장이든 안전교육은 기초적인 교육부터 시킵니다. 그것으로 시간을 거의 다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 큰 사람들에게 기초교육을 받으라고 하니 그만큼 재미없고, 교육도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기초적인 안전교육을 해주면 사업장의 경우 그만큼 교육 시간을 줄이고, 또 남는 시간에 현장에 정말 필요한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교육에 대한 집중도도 높아지고 효과도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연구실험실의 안전교육을 보면 현재 특별히 위탁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미흡한 상황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실험실에 해당하는 안전교육 과정을 전문기관에서 별도로 개설해주던지, 아니면 인근 대학교에 개설되어 있는 안전교육 과목을 연구종사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연구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실제 생활 속에서 안전의식을 항상 갖추도록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전은 업무범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복지 분야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지에 대해서는 요구하면서도 안전에 대해서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인드를 하루빨리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중요한 실험을 하더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그동안 어렵게 이룩한 모든 공적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점도 항상 명심해주시고 연구 활동을 진행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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