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장)
정혜선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장)


법은 민주 시민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정을 정한 약속이다. 이것만은 꼭 지키자는 것을 법으로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벌금 등으로 법의 준수의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느끼기에 법은 어느 순간 최소한의 규정이 아니라, 최대한의 규정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어떻게 하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법을 지키지 않고, 어떻게 하면 법의 망을 빠져 나갈지를 연구하고 탐색하는 것을 보면서, 법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IMF사태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일명 ‘비정규직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의 취지는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자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2년이 되기 전에 직장에서 해고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 법이 만들어질 때 2년 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2년 후 정규직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법을 만든 분들은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대학에서 정식으로 교수를 채용하지 않고, 시간강사로 강의를 대체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명 ‘시간강사법’을 제정하였다. 그 결과도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시간강사 일자리만 상실하게 되었고, 정식 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겸임교수 등으로 대체하는 현상이 생겼다. 시간강사법을 만들 때부터 예측되었던 일인데, 입법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안전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50명 이상 사업장에 안전관리자 및 보건관리자를 선임하거나, 안전보건 전문기관에 안전보건관리를 위탁하도록 정하고 있다. 근로자 수가 50명 전후에 있는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자를 채용하지 않기 위해 근로자 수를 50명 미만으로 유지한다. 사업이 확장되어 근로자를 추가로 채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채용하거나, 근로자를 채용해도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사업장 쪼개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50명 미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금년 1월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5명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등을 처벌하자는 법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근로자 수가 5명 전후에 있는 사업장은 근로자 수를 5명 미만으로 유지하여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결국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일용직으로 채용되거나,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이를 감독하기에는 우리나라 5명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73%나 되기 때문에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법과 제도는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지키라고 만들어지는 것일까? 피해가라고 만들어지는 것일까? 법이 만들어지면 기업의 훌륭한 법무 담당자들은 법의 예외조항, 법의 단서조항부터 찾는다. 법의 근본취지를 이해하고 법을 지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법을 지키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법의 규정에서 피해갈지, 어떻게 하면 벌금을 내지 않을지, 벌금을 내더라도 어떻게 하면 벌금을 적게 낼지를 궁리한다. 예방조치에 예산을 투입하는 비용이 저렴한지 벌금을 내는 것이 저렴한지를 비교하고, 실제 예방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사업을 보여주기 위한 서류작업에만 관심을 갖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기업의 책임자나 안전보건관계자가 아니라 법무법인에 소속된 분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300명에 이르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가 입법 실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양적인 숫자 증가에만 관심을 갖게 되어 법의 질적인 측면이 소홀해 지는 것이 아닌지 염려되기도 한다. 실적만 앞세우기 보다는 실제 그 법이 어떻게 해야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지 그 실효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하여 하나의 법을 만들더라도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법에 담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내용을 보완함으로써 법의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예외조항이나 단서조항으로 입법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 산재 사고가 더욱 자주 발생하고 있어 무척 마음이 아프다. 법에 의존한 규제정책과 외부 감독 중심의 산재예방사업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장의 필요에 의해서 예방 사업이 진행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산업안전보건에 경험이 많은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법의 조항에 연연하지 않고,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대책은 무엇인지, 실제로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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