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장(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정혜선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장(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중대재해 예방 및 감독의 컨트롤 타워인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설립되었다. 고용노동부 직제 개편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7월 1일자로 신설된 산업안전보건본부가 7월 13일 정식으로 출범식을 갖고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하게 된 것은 김용균 사망사건에 이어,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 등 대형 중대재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그동안 논의되었던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청 신설에 앞서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설립하여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것처럼 고용노동부에 산업안전보건본부를 만들어 최근의 이슈에 우선적으로 대응하고, 보다 철저한 준비기간을 거쳐 2023년에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출범식에서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하였다. 첫째는 재정투자, 교육 등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사업장 스스로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의식과 관행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늘어난 조직과 인력으로 재해가 다수 발생하는 건설현장에 대한 밀착관리와 사업장별 안전보건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며, 셋째는 민간재해예방기관 및 관계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업하여 산재예방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사업장에 대한 감독역량 강화와 체계적인 수사체계 구축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사업장 스스로 산재 예방을 할 수 있는 의식이 확산되도록 지원하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정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외부적인 감독과 규제 중심으로 산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산재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이제는 사전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사업장 내부에서 산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업장 스스로 산재를 감소시키겠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하는 감독은 일시적일 효과만 나타낼 뿐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 감독이 나올 때만 잠시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처럼 하고, 감독에 지적받지 않기 위해 서류작업만 열심히 시행할 뿐이지 실제 일할 때 안전을 꼭 지켜야겠다는 의식을 갖지 않게 된다. 이제라도 정부가 사업장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하니 제대로 된 정책이 시행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지만 그 변화는 쉽게 성과를 나타내지 않는다. 단기간에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정부가 다시 이 정책을 철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새로 출범하는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현장이 스스로 변화될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를 바란다.
 
산업안전보건본부 조직은 본부에 9개 과, 1개 팀을 설치하고, 기존 47명에서 82명으로 35명의 정원을 증가시켰으며, 지방관서에는 63개과, 2팀 821명을 배치하여 기존 715명에서 106명을 증원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 인원은 기대했던 것만큼 큰 숫자는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새로 생긴 업무를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의 인원은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신설되지 않아도 당연히 증가되었어야 할 인원이다.

특히 과로사, 산재 트라우마, 직장인 자살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업무를 담당할 부서는 과가 아니라 직업건강팀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실망스러운 마음이다. 특히 본부의 업무는 대부분 지방관서에 시달되어 실제 업무 집행은 지방관서에서 시행하게 되는데 본부의 증가된 업무와 인력에 비추어 보면 지방관서의 인원 증원은 충분하지 않은 상태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할 수 있도록 하여 실질적인 조직으로 정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중요한 과제는 무엇보다도 신설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비일 것이다. 본부에 신설된 안전보건감독기획과, 중대산업재해감독과 등에서 이 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비를 감독 중심으로 하려고 한다면 예방 중심의 사업과 연결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첫 번째 과제에서 제시한 사업장 스스로의 예방 의식 확산을 지원하는 것과 감독의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않는다면 산업안전보건본부로 개편된 장점을 효율적으로 살리기 어렵다. 사후적인 처벌에 중점을 두는 감독보다는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감독의 방법을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안전보건교육 시행여부를 서류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가서 실제 일하는 근로자들과 대화를 통해 무슨 교육을 받았느냐, 교육에서 무엇을 느꼈느냐, 교육받은 것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정해진 근로자를 면담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 근로자들을 면담하여 실제 안전보건 활동이 현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확인하는 것이다. 몇 개 사업장만 이렇게 감독을 시행하여 감독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면, 사업장은 이에 맞춰 서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안전보건 업무를 시행할 것이다. 감독 나온 그 때만 잘 넘기려고 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현장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기존의 틀을 탈피하여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할 때 진정으로 산업재해가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금번에 신설된 산업안전보건본부에 거는 기대가 정말 많다. 이제는 더 이상 일터에서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보상과 처벌보다는 선제적인 대응과 예방 중심으로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이 보장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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