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사)전국실업단체연대 사무처장

“정부, 시민사회와 함께 ILO 협약 비준 준비 나서야” 

지난달 16일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제100회 총회에서 국제노동사회의 마지막 중대 이슈라고 불리던 ‘가사근로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이 채택됐다. 협약의 채택은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가사근로자(가사도우미, 산후관리사, 육아도우미, 간병인 등)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선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실 그동안 국내 30여만명의 가사근로자들은 기본적인 노동권, 사회보장권 등 모든 법적 보호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번 협약 채택이 이들의 안전보건은 물론 노동 인권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일고 있다. 하지만 안팎의 기대만큼 현실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준 및 관련 법 마련 등 가야할 길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가사근로자의 안전보건수준을 높이는데 앞장서고 있는 전국실업단체연대의 최영미 사무처장을 만나 가사근로자들의 근로 현실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전국실업단체연대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단체에 대한 소개를 하려면 지금으로부터 1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IMF경제위기를 겪고 있었을 때로, 국가차원의 실직가정 지원사업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인천,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실직자를 돕기 위한 풀뿌리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었습니다.

초기 이들 단체들은 개별적으로 활동을 했었으나 보다 효과적이고 광역적인 활동을 위해서 연대가 필요하다는데 공감을 하고, 1999년 전국실업단체연대라는 이름으로 뭉쳤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단체는 일자리 사업, 실업자 교육, 취업상조회 모임 등 다양한 실직가정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직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단체는 전국에서도 우리 연대뿐입니다.

 


Q. 실업단체가 어떤 연유로 가사근로자 문제에 앞장서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IMF경제위기 때 가장 많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40대에서 50대 중장년층 여성들입니다. 전업주부였던 이들은 남편이 실직을 당하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대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거리로 나왔을 뿐 당시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술은 없고 나이만 많은 여성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경제위기로 자영업이 다 무너져 식당에 취업하는 것조차 ‘하늘에 별 따기’인 상황이었습니다.

실업단체인 우리는 ‘이들이 어떤 일을 하도록 지원을 해줘야하는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중 가사업무가 해법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늘 집안일을 해왔던 이들이기에 가사일이 익숙한데다 직업 훈련에 돈도 안 들기 때문에 금상첨화였지요.

우리는 즉각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우렁각시’라는 가사관리사 브랜드를 만드는 동시에 전국적으로 가사도우미 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었습니다. 아울러 이들에게 보다 나은 근무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한 활동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Q. 그간의 활동 내역을 간략히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가장 중점을 두고 펼친 사업은 ‘인식개선’사업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에도 가사관리사는 파출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가사업무가 정식 노동이 아닌 허드렛일 정도나 하는 것으로 치부됐던 것이지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가사근로자의 안전보건은 물론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언급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때문에 저희는 가사관리사도 엄연한 직업인이라는 인식을 심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판단, 캠페인 등 다양한 인식개선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활동이 2년여정도 지속되자 직업소개소들부터 가사관리사라는 용어를 쓰게 되는 등 사회적으로 상당부분 인식이 변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희는 체계적인 교육과정 등을 도입해 직업인으로 인정을 받기 위한 움직임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서부터는 다양한 시민사회노동단체들과 연계해 국내법 개정운동과 ILO협약 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 지난해 9월 가사근로자들에게도 근로기준법과 고용·산재보험 등을 적용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며, 우리 정부는 가사근로자노동협약 채택 이전에 이미 협약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Q. 가사근로자의 안전보건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일하는 곳이 대부분 집이다보니 산업현장에서처럼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우리 업종에서도 화장실내 전도사고, 유리 베임사고, 요리 중 화상사고 등의 재해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 저희가 2006년 가사근로자 333명을 대상으로 업무 중 사고경험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전체의 1/3일에 해당하는 97명의 근로자가 사고를 경험했다고 응답을 했었습니다.

사고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사고가 발생해도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사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대상, 즉 현행법상 근로자로 인정을 못 받다보니 산재보상 등 법적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가사근로자들은 업무를 하다 다쳐도 자비로 치료를 하고, 다친 기간 쉬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현장으로 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Q. 위 질문에 더해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

근무여건이 열악한 것도 문제입니다. 일부에서 ‘가정에서 일하니 편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릇된 시각임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가사관리사의 경우 대개 한 곳에서 4시간 정도를 일합니다. 이 시간 동안 가사관리사는 집주인과 함께 좁은 공간에 있게 됩니다. 눈치가 보여 잘 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4시간을 꼬박 쓸고 닦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한 곳의 일이 끝나면 가사관리사는 또 다른 가정을 찾아가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가사근로자들 중 태반이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저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67%가 근골격계질환 자각 증상을 보였고, 의사의 양성 판정을 받은 근로자도 20%에 달했습니다.

Q. 이번 협약 채택을 계기로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가사근로업종은 최근 몇 년 동안의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도 매년 5% 이상 자연 성장을 거듭해온 업종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유럽에서는 국가차원에서 가사근로를 적극 장려하면서 현재에는 전체 인구의 7~8%에 달하는 사람들이 가사근로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 인구보다 많은 수치이지요.

이런 가능성 있는 직종에 정부가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번 협약 채택을 계기삼아 정부가 조속히 비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비준을 위한 일련의 계획을 마련해 주길 희망합니다.

일반적으로 ILO 협약은 개별 국가의 비준서가 ILO에 접수된 후 1년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됩니다. 지금 당장 비준을 해도 1년이 지나야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상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가사근로자들의 근로환경을 감안할 때 정부가 시급히 행동에 나서야 함은 당연한 논리일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가사근로자들을 원천적으로 법적 보호에서 제외시켜왔기 때문에 사회적 보호의 수준이 다른 나라들보다 매우 열악한 실정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서둘러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업종별 실태조사 등을 통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한편 개선방안을 마련해 국내법부터 개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수월할 수 있도록 우리 시민사회가 적극 돕겠습니다. 가사근로자 보호운동을 벌여온 관련 단체와 양대노총,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할 수 있는 논의의 테이블을 정부가 마련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비준 준비기간도 더욱 줄어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Q. 향후 추진할 산안분야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선은 지난해 초벌로 실시한 바 있는 건강실태조사를 근시일내 전문가 집단을 보강해 다시 한 번 실시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단순히 근골격계질환 예방체조를 가르치고, 의료보험 건강검진을 권고하는 정도로 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데, 전문적인 검사가 진행된다면 보다 체계적인 건강관리를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적극 추진 중에 있습니다. 현재 저희 나름대로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나 전문성 등에 있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대한산업안전협회 등 전문산안컨설팅기관들이 적극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사근로자들의 안전보건문제는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들에 특화된 안전보건교육이 실시되고, 이들이 안전한 업무규정에 따라 근무를 할 수 있도록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Q. 끝으로 국민들에게 하시고픈 말씀이 있다면?

예전엔 가사근로자의 대부분이 중하층의 중장년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30대 여성의 비중이 늘어나는 등 가사근로자의 연령층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아마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생계유지가 벅찬 가정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또 맞벌이 가정의 증가,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년가정의 증가 등으로 인해 가사관리사를 필요로 하는 가정도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시대상황은 가사관리자의 보호가 더 이상 ‘취약계층 보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한 직종의 보호차원을 떠나 일반적인 사회문제로 올라선 것이지요.

다시 말해 여러분의 어머니 또는 고모·이모, 누나·동생도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지면 가사관리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 가사근로자를 고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지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계속 일하도록 방치하시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불안한 상황에 놓인 가사근로자의 처지를 묵인하면서 가사근로자를 고용하시겠습니까?

국민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주실 때만이 가사근로자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여러분은 더욱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부디 이 점을 꼭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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