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전략연구소 백금기 실장

 


청년은 스무 살 한창 나이에 감전재해로 왼쪽 팔과 왼쪽 다리를 잃었다. 또 사고는 그가 소중히 키웠던 꿈과 희망을 순식간에 절망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청년에게 남은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동정 섞인 세간의 시선, 자살로 가득한 잡념뿐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겐 스스로 목숨을 끊을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청년에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멘토를 만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새로운 삶의 목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청년은 다시 한 번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늦은 나이에 대학의 문을 두드렸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힘겨운 도전이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잘해야 또 다른 장애인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방송인이자 경영컨설턴트, 동기부여강사로 최근 세간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화전략연구소 백금기 실장의 이야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어느 날, 밝은 목소리와 환한 미소 뒤에 숨겨져 있던 그의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감전사고로 온 몸에 화상

1973년 3월 2일. 그는 전남 장성군 삼서면 어느 시골 농가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귀여움을 독차지할 막내아들이것만 지독히도 가난한 농가에서 그것은 꿈도 못 꿀 사치였다.

정규 교육을 마치기 무섭게 생활 전선에 나서야만 했다. 곁눈질로 배운 전기공사일이 그의 밥벌이였다. 안전장구 하나 지급받지 못했던 당시 작업 여건을 감안하면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나 다른 일에 비해 보수가 좋았기에 직업선택에 있어 고민은 없었다.

그렇게 전기공으로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의 작업 터는 전남 함평군 나산면의 한 전신주였다.

선임자가 그에게 전신주에 오를 것을 지시했고, 그는 군말 없이 올랐다. 이어 선임자는 정전상태라며 그에게 작업을 시작하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선에 왼손을 댔다. 그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몸에 불이 붙었고, 2만2,900V의 전기가 그의 몸을 관통했다. 1992년 8월 17일,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내겐 자살할 능력도 없었다”

온 몸에 걸친 4도 화상. 의사는 죽지 않은 것이 천운이라고 했다. 하지만 왼쪽 팔은 잘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는 그나마 다행으로 전기가 빠져나간 왼쪽 발은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옮겨지면서 그는 왼쪽 발마저 사라진 자신의 몸을 마주해야 했다. ‘그래도 양 다리와 오른 팔이 있으니 어떻게든 살 수 있겠지’했던 마지막 희망조차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하지만 엎드린 채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던 그에게는 자살할 힘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진통제 한 알을 더 받기 울부짖는 것뿐이었다.

그 뒤 피부이식수술 등 몇 번의 수술이 이어지는 가운데 9개월여의 시간이 지났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상처는 아물었다. 의사는 그에게 의족을 끼고 걸음을 연습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없던 그는 부모가 힘들게 구해 온 의족을 집어던져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의족 제작자가 직접 의족을 들고 왔다. 의족을 든 제작자의 발도 의족이었다. 차마 의족을 전처럼 던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고가 난지 1년 만에 의족을 끼고 다시 두발로 일어섰다.

이 시대 최고의 동기부여 강사를 꿈꾸다

퇴원을 한 그를 친구들은 인근 야시장으로 데려갔다. 그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사고 있는 이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그에겐 작은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세상은 장애인인 그에게 쉽사리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사장을 붙잡고 일을 못하면 돈을 주지 않아도 되니 일만 시켜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기회를 잡으면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 운전을 배워 대리운전도 하고, 주차장 관리원일도 하고, 음료수 도매일도 했다.

숱한 도전 속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생겼지만 막연한 두려움도 커져만 갔다. ‘이런 허드렛일로 평생을 보내야 하나’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런 그에게 2004년 인생을 뒤바꿀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연한 기회로 국내 최고의 경영컨설턴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영권 박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박사는 그에게 남은 평생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알려 힘겨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박사는 보다 높은 학식을 쌓을 것을 조언해주며,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맺고 직접 그를 이끌어 주기 시작했다.

멘토의 가르침에 힘입어 그는 33살의 늦은 나이에 대학(경영학과)에 도전했다. 졸업을 하자 연이어 대학원에 진학했고, 현재는 석사(사회복지학)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 그는 학업 중 각종 기업체, 학교, 방송사 등의 초청을 받아 강단에 섬으로써 동기부여 강사로 이름을 알렸다.

앞으로 그는 최고 학위인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 시대 최고의 동기부여 강사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백금기 실장은 “내 삶을 통해서 그릇된 삶을 살고 있는 단 한사람이라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싶다는 목표에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나락에서 이곳까지 올라왔다”라며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강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누구든 현재 위치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 차근차근 인생계획을 추진해나간다면 삶 그 자체가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