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 옆의 띠풀 집에 한가히 혼자인데 (臨溪茅屋獨閑居)
밝은 달과 맑은 바람 흥취가 넘치누나 (月白風淸興有餘)
찾아오는 손님 없이 산새와 벗을 하고 (外客不來山鳥語)
대밭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을 보네 (移床竹塢臥看書)

길재(吉再 1353~1419) 〈술지(述志)〉《야은집(冶隱集)》(한국문집총간 7집) 

길재는 고려말기의 문신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켜 은거했던 인물이다. 이 시에도 미련 없이 속세를 떠나 한가로이 지내는 작가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길재는 이 시에서 “시골의 조용한 개울가에 작은 초가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맑은 밤하늘에는 달빛이 환하게 비추어주니 삶에 흥취가 절로 가득하다. 그리고 세상과 등지고 살고 있으니 찾아오는 손님 하나 없지만 언제나 산새가 옆에서 지저귀니 외롭지도 않고, 시원한 대나무 그늘 아래의 평상에서 엎치락뒤치락 누워 책을 볼 수도 있으니 더 이상의 한가로움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은 그의 문집《야은집(冶隱集)》에는 ‘술지(述志)’로 기록돼 있고, 《동문선(東文選)》과 《용재총화》등에는 ‘한거(閑居)’로 수록돼 있다. 조선의 조정에서 예우를 갖추어 모시려 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던 절의를 생각할 때에는 ‘술지(述志)’도 좋겠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세상일에 초탈했던 풍모를 생각할 때에는 ‘한거(閑居)’가 좀 더 어울리는 듯하다.

이 시는 작가의 절의와 달관자적 삶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이런 거창한 의미를 부여 하지 않고 그냥 한가한 어느 한 때의 모습을 묘사한 정도로만 읽을 때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더 많은 느낌을 줄 것 같다. 현대인들 특히 도시인들은 인공 구조물 속에서 늘 바쁘고 여유가 없다. 한 번씩 누릴 수 있는 휴가 기간조차도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만다.

어느덧 이번 여름도 다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휴가기간도 다 지나 더 이상 한가로운 곳을 찾을 수 없다면, 잠시나마 눈을 감고 나무그늘 아래의 평상을 상상해 보는 정도의 여유라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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