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문제, 산안법 개정 문제 등 집중 포화
이채필 장관 “다양한 계층 의견 수렴, 개선해 나갈 것”
18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지난 19일 기획재정부, 국방부 등을 시작으로 20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이번 국감은 내년 총선ㆍ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진행돼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의 첨예한 대치 속에 진행됐다. 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예리하고 집요한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각 피감기관에 쏟아졌다.

안전을 주무로 하는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소방방재청 등도 이런 시류를 피해갈 수 없었다. 삼성 반도체 산재인정 문제,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 문제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의원들의 날선 질문이 국감 내내 계속됐다. 다음은 상기 부처들의 국감에서 제기된 주요 사항을 정리한 것이다. 


이미경 의원 “근로자 위한 산재보험돼야”

이번 고용부 국감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된 것은 삼성전자 산재문제였다. 그 첫 포문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열었다. 이미경 의원은 20일 열린 고용부 국감에서 삼성전자의 지나치게 낮은 산업재해요율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산업재해요율은 3.5%에 불과했다. 이는 가장 안전한 직업군으로 평가받는 교육·서비스업(8%)과 부동산임대업(10%)의 산재요율 보다 낮은 수치다. 심지어 전자업계 평균 산재요율(7%)과 비교해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 의원은 “삼성전자 근로자 중 현재까지 암으로 인한 사망자만 50여명에 이르지만, 산재로 인정을 받은 경우가 없어 삼성전자가 가장 낮은 산재요율을 적용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최근 법원이 백혈병으로 피해를 입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근로복지공단과 막강한 삼성변호인단이 항소하며 산재인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이런 삼성의 강압적인 대처로 인해 산재환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그는 “산업안전 선진국인 독일의 경우도 한 해 동안 직업성 암환자로 인정받는 숫자가 2,000명인데, 우리나라는 20~30명에 불과하다”라며 “이는 관리가 잘 되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 미비 탓인 만큼 고용부가 제도를 근로자 친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채필 고용부 장관은 “산재보험은 근로자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들었을 때 순수하게 보험을 통해 보장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사회보험”이라면서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가 밝혀진다면 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 “근로복지공단, 삼성과 손잡고 항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국감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전자와 결탁해 백혈병 산재 피해자 인정 판결에 대한 항소를 준비했다는 의혹을 제기, 주목을 받았다.

정 의원에 따르면 지난 6월 23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가 처음으로 산재인정 판결을 받은 뒤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 백혈병 산재 피해자 인정 판결에 대한 항소를 준비했다.

정 의원은 “공단의 삼성반도체 산재 소송 수행자들이 삼성반도체 사업부 핵심 인사들과 만나 항소와 관련해 합동 대책회의를 가졌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이 사실상 삼성법무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근로자의 재해보상과 보호를 위해 일해야 할 근로복지공단이 사실상 삼성법무팀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 의원은 “신영철 공단 이사장이 지난 7월 피해자 및 유족 측과 가진 면담에서 항소를 하게 된다면 그 사실과 이유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확인 결과 공단은 이미 사흘 전 검찰에 항소 이유서를 몰래 제출해놓고 유족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의혹과 관련해 신영철 공단 이사장은 “삼성전자와의 만남은 공단이 항소심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삼성전자측에 보조참가 취하를 요청한 자리였다”면서 “대책회의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또 신 이사장은 “유족과의 면담에서는 검찰 진행과 별도로 본부 차원에서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검찰과 다시 한 번 협의하겠다는 약속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항소가 안됐으면 하는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같은 안타까운 사연은 한 해 3,500건이 넘는다”라며 “무조건 항소하는 것이 아니라 항소심으로서 다룰만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항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성천 의원 “고용부 더욱 신중히 제도 개선해야”

한나라당 강성천 의원은 최근 고용부가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참고로 개정안은 기존 정부(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가 해오던 유해위험방지계획서의 심사·확인을 민간지도사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성천 의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해율이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할 정도로 산업안전 수준이 낮다”면서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의 심사·확인을 민간지도사가 시행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채필 장관은 “고용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힘만으로 모든 사업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수한 전문성을 지닌 외부 전문가의 지혜를 빌리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강 의원은 “고용부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근로자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다보니 산업계와 노동계의 우려가 크다”면서 “보다 많은 계층의 의견을 수렴해 한 번 더 심사숙고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 장관은 “그간 나름대로 노·사·정 대표, 학계 등과 TF를 구성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왔다”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해나갈 터이니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이어 이 장관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듯이 향후에는 더욱 많은 민간 전문가가 산재예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조해진 의원 “국내사업장 84%, 산업안전 위반”

조해진 의원은 고용부 국감에서 국내 사업장의 심각한 안전불감증 실태를 고발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고용부가 지난해 2만8,103개 업체를 대상으로 산업안전 점검을 실시한 결과 84%인 2만3,538개 업체가 제재조치를 받았다. 사실상 사업장 10곳 중 8곳 이상이 산업안전 의무를 위반한 것.

조 의원은 “우리나라에 산재보험 적용사업장이 160만개인데, 여기에 이번 적발률을 대입하면 무려 135만개 사업장이 안전의무를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조 의원은 사업장의 안전실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부의 감독기능은 매우 미흡한 점을 문제로 들었다.

조 의원은 “160만개 사업장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산업안전감독관 수는 전국을 통틀어 270여명에 불과해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우리나라의 지난해 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인구 1만명당 9.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이라며 “산업안전 의식이 체화될 수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덕 의원, 특수형태 근로자 보호방안 촉구

이번 고용부 국감에서는 퀵서비스 근로자 등 특수형태 근로자 보호방안을 촉구하는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그 대표주자는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었다.

홍 의원은 “고용부가 지난 7월 8일 퀵서비스 근로자들의 산재보험 적용방안을 발표했지만, 사업주와의 전속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근로자가 전액을 부담하는 임의 가입 방식의 ‘중소기업 사업주 특례방식’을 적용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참고인으로 나온 퀵서비스 근로자 이형기씨는 “기본생계도 이어 나가지 못하는 퀵서비스 근로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없다”면서 “고용부의 실속 없는 생색내기 정책”이라고 동조의 뜻을 보냈다.

반면 또 다른 참고인이자 사업자 대표로 나온 박영훈 코리아네트웍 기획이사는 퀵서비스 근로자의 특수한 근무 여건상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해 산재보험에 가입시키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 이사는 “근로자라면 일정한 출근이 보장돼야 하지만 퀵서비스 기사분들은 자기들 임의로 출근 여부를 정한다”라며 “회사에 소속된 일반 근로자와는 성격이 다른 만큼 산재보험 가입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의 의견을 들은 이채필 고용부 장관은 향후 여러 분야의 의견을 수렴한 후 점진적으로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