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득히 이별한 뒤로 (一別佳人隔楚雲)
나그네의 그리움은 깊어만 가네 (客中心緖轉紛紛)
심부름꾼 아니 와서 소식 끊기니 (靑鳥不來音信斷)
벽오동에 빗소리도 차마 못 듣겠네 (碧梧凉雨不堪聞)

유희경(劉希慶 1545~1636)〈도중에 계랑을 그리며(途中憶癸娘)〉《촌은집(村隱集)》(한국문집총간 55집)

조선시대 기생(妓生) 가운데 황진이(黃眞伊)와 매창(梅窓)은 뛰어난 시인(詩人)으로 꼽힌다.

황진이가 당대의 학자 서경덕(徐敬德)과의 로맨스로 유명하다면, 매창은 당대의 시인 유희경(劉希慶)과의 사랑으로 유명하다. 유희경은 부안(扶安)에서 매창 이계랑(李癸娘)을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져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일찍이 남쪽 지방 계랑의 명성을 들었는데(曾聞南國癸娘名)/시와 노래는 서울까지 유명하였지(詩韻歌詞動洛城)/오늘에야 그대의 진면목을 보게 되니(今日相看眞面目)/마치 선녀가 천상에서 내려온 듯(却疑神女下三淸)”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임진왜란의 발발로 오래가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온 유희경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전쟁터로 나가게 되자, 난리통에 서로 소식이 끊겼던 것이다. 위의 시는 전쟁 중에 유희경이 매창의 소식을 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심정을 노래한 시다.

한편 서울로 떠난 유희경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매창도 애틋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당시에 지은 시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라는 시조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간절히 서로를 그리워하였으나, 매창이 갑자기 병이 들어 요절하는 바람에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가을이다. 지루했던 우기(雨期)의 긴 터널을 뚫고 찾아온 청명한 가을이 더욱 싱그럽게 다가오면서도,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문득 계절의 감상(感傷)에 젖어 사랑을 노래한 고인(古人)의 시를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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