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환씨

2009년경 경기도 안산 인근 건설현장에서 정두환씨는 소문난 만능 일꾼이었다. 목공, 미장, 용접, 콘크리트 타설 등 못하는 게 없었다. 심지어 건설 일용직 근로자 중에선 드물게 도면설계까지 할 수 있었다. 정규 교육과정 등을 통해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15년여를 건설현장에서 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숙련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어떤 일을 하건 제대로 하자는 그만의 고집과 집념도 상당부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빼어난 능력과 근면함 덕분에 그는 계속되는 건설불경기 속에서도 항시 일감이 끊이지가 않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안산일대 건설현장에서 이 유능한 건설 역군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사연의 시작은 지난 200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물 2층서 용접작업 중 추락

2009년 7월 11일 정두환씨는 안산 인근의 모 근린생활시설 신축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에게 맡겨진 일은 6미터 높이의 건물 2층에서 지붕을 얹기 위한 골조 구조물(트러스)을 용접하는 것이었다.

늘 하던 용접이었지만, 이번 작업만큼은 썩 내키지가 않았다. 안전모 외에는 별다른 안전장구도 지급되지 않은데다 공기가 임박했다며 현장소장이 계속해서 재촉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장 생계를 꾸려야 할 가장이 이 일 저 일 가릴 수는 없는 일. 걱정스런 마음을 뒤로하고 작업에 임했다.

한참 용접 작업을 하다 잠시 자세를 바꾸려고 몸을 움직인 순간 발을 헛디뎠다는 느낌이 왔다. 하지만 채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몸은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몸에 익은 낙법으로 목숨 구해

동료 근로자들에 의해 합판에 눕혀진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서둘러 팔, 다리 등을 움직여 보니 모두 움직여졌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젊은 시절 수년간 익힌 유도가 목숨을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닿는 순간 낙법을 써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렇다고 아픈 곳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발목과 허리 부위의 통증은 상당했다. 서둘러 동료들과 인근 안산산재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검사 결과,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즉각적으로 발목수술이 시행됐고, 그로부터 몇 주 후 허리수술이 연이어 실시됐다.

입원과 통원치료 등 회복기간만 2년이 걸렸다. 통증은 많이 완화됐지만 전반적으로 신체능력이 사고 전과 비교해 많이 저하됐다. 뛸 수도 없었고, 무거운 물건을 들 수도 없었다.

이젠 내 스스로 안전에 앞장설 것

근력과 기술 하나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온 그의 입장을 볼 때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생계가 끊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때문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늘 그를 힘겹게 했다. 이런 그에게 큰 힘이 돼준 것이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그가 다치자 젊었을 적 배웠던 미용기술을 활용해 어렵사리 미용실을 개업했다. 수년 동안 가정 일에만 전념해온 아내로서는 크나큰 모험이었다. 두려움이 컸지만 남편이 마음 편히 재활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이다. 이같은 아내의 배려와 희생에 보답코자 그는 더욱 열심히 치료에 매진하는 한편 가정 일도 틈틈이 도왔다.

최근 정두환씨는 굴착기 기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건설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가장 잘하는 일이 그것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조심조심 일을 하겠다는 각오를 새긴 것이다. 이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 나아가 현장의 안전을 돌보는 ‘안전지킴이’가 되겠다는 정두환씨. 부디 그가 사고가 많은 소규모 건설현장에 안전을 정착시키는 길잡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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