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隱者能顯也, 眞顯者能隱也 (진은자능현야, 진현자능은야)

진실로 숨어 살 수 있는 덕을 가진 사람은 출세할 수 있는 역량도 있으며,
참으로 출세할 역량이 있는 사람이면 숨어서 살 수도 있다.

임춘(林椿)〈일재기(逸齋記)〉《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한국문집총간 제1집)

능력 있는 사람이 세상에 쓰이지 못하거나, 반대로 능력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인사(人事)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비판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능력이 있을 줄 알고 발탁했는데 정작 그 자리에 올라가서는 형편없는 성과를 내거나, 반대로 별 볼일 없을 줄 알고 임명을 꺼렸던 사람이 의외의 성과를 내서 임명에 반대했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잘못된 인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서하(西河) 임춘(林椿)선생의 윗글은 인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은거하면서 역량을 기르고 있다가 때가 이르면 세상에 나아가 그 역량을 발휘하고, 여의치 않으면 다시 조용히 물러나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진퇴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커다란 화두이고 고민입니다. 나아갈만할 때 나아가고 물러날만할 때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자리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 기를 쓰고 그 자리에 오르려 하다가 정작 자리에는 올라보지도 못하고 패가망신하거나, 오르기는 올라도 그 과정에서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는 문제가 생겨서 물러나야 할 때 바로 물러나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사방에서 집중 공격을 당하여 마침내 온갖 더러운 치부가 만천하에 다 알려진 다음에 등 떠밀려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서 적절히 처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라 하겠습니다. 서하 선생 말씀처럼 진실로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면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 있어 이렇게까지 구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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