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순 매경안전환경연구원장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명예교수

안전을 홀대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발전이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안전에 투자해야 더 큰 피해 막아
이영순 원장은 우리나라 산업안전역사를 이끌어 온 거목 중 하나다. 40여년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예비 안전인을 양성한 것은 물론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안전정책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안전학회 회장, 대한산업안전협회 사외이사, KOSHA 기준제정위원회 화학분과위원장 등을 역임, 안전분야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을 대표해 왔다.

또 수많은 연구와 실험에 참여하면서 산업안전의 학문적 발전에도 앞장서 왔다. 실로 그의 발자취가 우리나라 산업안전의 역사인 셈이다.

이런 큰 족적을 남긴 그가 얼마 전 정년퇴임을 맞이했다. 거목의 퇴장에 각계에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같은 호소를 들었을까? 그는 최근 다시 한 번 선진 안전강국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안전분야 최고의 연구기관 중 하나인 매경안전환경연구원의 원장직을 맡은 것이다. 마지막 열정까지 안전문화 정착에 쏟겠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얼마 전 정년퇴임을 맞이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40여년의 교직생활을 큰 허물없이 마무리하고,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음양으로 도움을 준 학생들과 동료교수, 교직원, 관련 분야의 전문가 및 공직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성원이 없었다면 맡은 바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는 재직하는 동안 학교 강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향상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했다고 자부해왔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안전관리를 넓은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관련 지식과 기술만을 강조한 것 같아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Q. 넓은 시각의 안전관리라 함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다른 분야와의 균형을 도모하면서 안전관리의 향상을 가져오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방식에 좀 더 역점을 뒀어야 했는데, 저는 안전관리분야의 독자적인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연구를 진행해왔지요.

안전관리는 관련 지식과 기술만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와 연계를 도모할 때 지향하는 목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사업장에서 안전을 확보하고자 할 때 안전 관련 지식과 기술만 갖추고 있다고 그것이 가능할까요? 어느 정도 선까지야 가능하겠지만 완벽한 안전관리는 불가능합니다. 무결한 안전관리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여기에다 경영활동 전반에 대한 사항 즉 조직의 특성, 생산관리, 재화의 흐름, 인간의 특성, 사회와 제도, 문화 등에 이르는 폭넓은 지식이 반영돼야 합니다.

Q. 원장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가 빈발하고 있는 주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업체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나가서 사업을 할 때에는 산재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근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에선 잦은 사고를 내던 근로자가 선진국에 가서 일을 하면 거의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선진국에서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엄격한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선진국에선 사업주는 물론 구성원 모두가 관련 작업에 대한 안전관리 지식 및 기술을 충분히 익힌 후 작업을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안전관련 부서나 전문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사회적으로 안전관리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가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니 안전관리를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를 해도, 이를 지키려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안전관련 지식이나 기술도 익히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안전관리는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규가 아무리 강력해도 결국 이를 지키고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이 법규는 작동할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Q. 그럼 산재를 줄이기 위해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적으로 법규 등에 의한 규제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정부가 강력한 집행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정부의 집행의지란 안전관련 부처만의 의지가 아닌 범정부적인 차원의 의지를 의미합니다.

안전관련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보다 작업장 및 사회의 분위기, 문화적인 요소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안전관련부처만이 아닌 범부처적인 역량이 집중돼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안전문화의 형성을 위한 범부처적인 노력이 펼쳐지는 가운데 주무부서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정책을 개발·보급해야만 안전을 중시하고 법규를 중시하려는 사회문화가 정착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표본이 바로 최근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펼치고 있는 ‘안심일터 만들기’ 사업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부의 노력에 사회도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정부부처가 하나의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여기에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안전문화는 결국 미완의 작품이 되고 맙니다.

즉 산재감소의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범정부차원의 노력은 물론 사업장의 경영진과 근로자, 관련 기관 및 단체, 학계 전문가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업장에선 안전을 우선시하는 기업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안전전문가들은 안전한 작업표준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Q. 최근 울산석유화학단지 등에서 화재, 폭발사고가 잇따라 발생, 국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고가 빈발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화학관련산업은 유해위험물질을 다량 다종으로 사용하는 고위험산업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화학관련사업장은 특별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화공분야의 사업장은 고 에너지 물질과 위험설비를 사용하는 만큼 고도의 정밀 기술과 위험성평가기법을 활용하여 잠재된 위험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어느 위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고로 전이되고, 또 사고 발생 시에는 어느 정도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 등을 예측, 그에 맞는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사고의 위험에 대비해 가용한 모든 안전기술을 다 동원해야 하는 것이지요.

헌데 최근 유럽발 금융위기와 미국의 경제상황악화 등으로 국내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기업들의 관리체계에 소홀함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긴축경영을 함에 따라 안전관리부서 등 지원부서의 인력을 감축하고, 직접적인 생산활동 외에 긴급한 사항이 아니면 뒤로 미루려는 현상이 기업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위험성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작업허가, 변경관리, 비상조치계획 등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보면 경제가 어렵고, 기업이 어려워졌을 때 산업재해 등 악재가 뒤따랐습니다. 부디 이 점을 명심하여 화공분야 사업장이 어려울수록 공정에 더욱 세심한 관심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매경안전환경연구원을 이끌어 감에 있어 역점을 두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연구원은 기업에 안전과 환경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된 공익법인입니다. 저는 이러한 설립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연구원을 더욱 다양한 계층이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로 현재 매분기마다 열리고 있는 안전환경리더스클럽(SEL 클럽) 간담회를 더욱 확대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현재는 관련 부처 장관 등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정부 정책방향 등을 듣고 질의응답하는 형식으로만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모임으로 확대하려 합니다. 즉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관련부처와 매일경제신문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우리 연구소가 실질적인 수행을 맡고 있는 매경안전경영대상과 환경경영대상을 더욱 많은 기업과 국민의 사랑을 받는 행사로 만들고자 합니다.

안전환경관련 행사가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야 안전환경분야 역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더 많은 기업인과 근로자, 정부 인사들을 만나면서 이들 행사의 중요성을 알려나갈 것입니다.

끝으로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사업장에 폭넓은 기술지원을 해주려 합니다. 사업장 중에는 안전관리를 하고 싶어도 적합한 안전관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또 어떤 방법으로 추진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못하는 사업장이 많습니다. 이런 사업장에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우수한 전문가 인력풀을 구성하여 정보와 기술을 확보한 후,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기관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해나가려 합니다.

Q. 관련 법령의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는 등 산업안전보건사무의 지방이양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산업안전보건업무는 고도의 기술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이들 업무를 지방으로 이양한다함은 지방도 관련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정부의 자신감에 의문을 표하게 됩니다. 지방에 산안업무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재가 확보됐는지, 또 관련 인프라가 구축됐는지 등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같은 부당함을 알리는 연구도 여러 곳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금이라도 보다 면밀한 검토에 나서야 합니다. 이런 준비 상황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저는 지방이양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안전인들과 근로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전인 여러분! 여러분은 열심히 해야 본전도 찾기 어렵다는 평을 듣고 있는 안전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또 사고가 나지 않으면 현장 기술자 덕분이고, 사고가 나면 안전관리자 때문이라는 세간의 어긋난 시선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업무에 매진하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여러분들이야 말로 안전의 전도사이자 최고의 애사자,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몰라줘도 또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 한다해도 여러분이 우리 사회를 평안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부디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뭉친 고귀한 정신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근로자 여러분! 안전한 작업은 여러분을 호시탐탐 위협하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하는 지름길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도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것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사고로 희생되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세상 그 어떤 것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안전한 행동,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습관화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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