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지진 계기...전방위적 대책 강화
국토부•소방방재청, 2층 이하 건물도 내진설계 대상 추진

공식 사망자수만 17만명(1월 27일 기준)으로 알려진 아이티 대지진이 발생한지 20여일이 지난 가운데 세계 각국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지진대응책 보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 주재로 관련부처 지진방재종합대책 보고회를 여는 등 대응책 마련에 서둘러 나서고 있다. 특히 이번 아이티 참사의 경우 지진피해를 견딜 만한 내진설계나 건축기법의 부재가 피해를 키운 주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보완·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내진설계와 관련, 지진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국내 내진설계 현황, 한·미·일 내진설계 기준 등을 살펴봤다.

 

◇ 내진설계 알아보기


규모 7.0의 강진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아이티에서의 지진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그 이유 중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내진설계의 부재’다.

지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진동은 주로 횡방향의 진동을 일으키는데 건물은 횡방향의 하중에 취약하므로 많은 피해를 받을 수 있다. 내진설계는 이러한 지진운동에 대하여 건물이 저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선택하고 부재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내진설계의 대표적인 구조로는 철골구조와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있다. 철골 구조는 주요 구조체로서 연성이 좋은 철강재를 사용하는 구조로 초고층 교량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결합하여 짓는 구조로, 이 역시 중·고층을 짓는데 많이 사용된다. 철근과 콘크리트의 결합은 각 자재의 단점을 보완해 지진에 대한 인성을 높인다.

철근은 누르는 힘에 의해 끊어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에 휘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콘크리트는 누르는 힘에는 변형이 없지만 당기는 힘에는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로 인해 이 둘을 결합해 사용하면 각각 자재의 휨과 부서짐이 보완돼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이 철근 콘크리트 공법에서는 세로 방향으로 세워져 있는 주근에다 가로 방향으로 철근을 감아주는 ‘후프 공정’이 실시되는데 이 공정이 내진의 인성을 크게 좌우한다. 이 후프의 간격이 좁을수록 건물의 연성이 좋아져 지진에 더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진에 약한 대표적인 건물구조에는 조적식 건물이 있다. 조적식 구조란 돌·벽돌·콘크리트블록 등을 쌓아 올려서 만드는 구조를 말한다.

내구성은 우수하나 지진 등에 의한 수평방향의 외력에 대해서는 큰 약점을 지니고 있다. 국내 5층 이하 건물 대다수가 이러한 조적식 건물로, 지진 발생시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실제 금번 아이티에서도 조적식 구조의 저층 건물 대다수가 무너져 큰 인명피해를 가지고 왔다.

◇ 국내 내진설계 현황

국토해양부는 1978년 홍성지진 이후 1979년 댐, 1985년 터널, 1988년 건축물, 1992년 교량, 2000년 항만시설 등 국가 주요 시설물에 대하여 규모 5.4~6.5 수준의 지진에 대비, 내진성능을 확보해 왔다.

이 결과 현재 댐은 100%, 공항은 94.5%, 도로는 93.2% 등 주요 SOC 시설에 대한 내진비율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전체 시설·건축물을 놓고 본다면 내진비율은 상당히 낮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내진설계 대상 시설물 1,078,052개 중 실제 내진 설계가 적용된 시설은 18.4%인 198,281개에 불과하다. 특히 지진 발생 시 피난처 역할을 하는 학교시설은 18,329개 동 중 13.2%인 2,417개 동만 내진 설계가 적용됐다.

이렇듯 내진설계가 적용된 시설의 비율이 적은 것은 관련 규정이 뒤늦게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야 ‘6층 이상, 1만㎡ 이상’의 건물에 내진설계를 하도록 법제화(일본 1978년 지진대책특별법 제정)했다.

즉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내진설계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로, 사실상 고층건물과 주요 시설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건물에 내진설계가 안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원용 대한산업안전협회 건설진단팀장은 “기존 민간시설물에 대해서는 법적근거가 없어 내진설계에 대한 보강도 강제할 수가 없다. 만약 아이티와 같은 규모 7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면 88년 이전에 지어진 5층 이하 건물은 거의 다 붕괴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 한·미·일 내진설계기준 비교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7월 내진설계 대상을 기존 ‘6층 이상, 1만㎡ 이상’에서 ‘3층 이상, 1천㎡ 이상’ 건축물로 확대, 이들 건축물과 SOC시설, 학교, 병원인 경우 모두 규모 5.4~6.5 정도의 지진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는 건물 높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역과 건물의 위험도에 따라 평균 8.0규모 내외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를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우리나라가 많이 완화한 규정을 두는 듯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서는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국 건축기준에 의해 지진구역을 5개 등급(1, 2A, 2B, 3, 4)으로 분류할 경우 우리나라는 최소 지진구역인 0과 1등급에 해당하기에 무리한 내진설계기준을 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경우도 비교적 지진규모가 적은 동부에는 규모 6.0 정도의 내진설계를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준을 높여 시공을 어렵게 하고 건축비용을 올라가게 하는 것보다는 지금 정도의 기준이라도 더 많은 시설물들이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지진대비에 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한양대 건축공학과 내진진동연구실 한상환 교수는 “건물의 지진저항을 위한 시스템 설계방법 및 시스템 상세기준은 이미 많은 개정을 통하여 미국 등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맞췄다.

향후 규정을 더 강화하는 것 보다는 국내 지진의 예상규모를 감안하여 현 기준에서 제안한 시스템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 내진설계 향후 계획

정부는 지난 1월 25일 박연수 소방방재청장 주재로 지진재해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국가 주요 시설물은 물론 민간시설에 대한 지진방재대책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회의를 통해 각 부처들이 내놓은 내진설계 강화에 대한 대책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국토해양부는 현재 추진 중인 공공시설물 내진보강중장기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한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공항, 일반국도는 오는 2012년까지 100% 내진성능 확보를 완료할 계획이며 고속국도, 일반철도는 단계적으로 내진성능을 확보할 예정이다.

또 현재 보강비용 등의 문제로 실적이 미미한 아파트, 소규모 공동주택(다세대, 연립) 등 민간건축물에 대한 내진보강 유도사업도 적극 실시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소방방재청과 함께 민간건축물이 내진보강을 할 시 지방세 경감, 재해보험율 차등적용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관련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기존 건축물이 허가대상인 증축, 대수선, 리모델링 등을 하는 경우에도 내진설계기준을 적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소방방재청은 지진발생시 가장 큰 피해를 내는 시설임에도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인 2층 이하 저층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현행 3층(또는 1천㎡) 이상 건물로 규정된 내진설계 대상에 저층(1~2층) 건축물도 포함시킬 수 있도록 ‘건축법 시행령’의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이들이 주로 민간시설임을 감안, 강행규정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권고규정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여론을 수렴 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원용 팀장은 “무작정 내진 보강을 한다는 것은 너무 큰 시간·비용적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차츰차츰 재건축을 통해서 과거 내진설계가 안된 건물을 없애가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상환 교수는 “대책을 마련함에 있어 중·저층 건물의 영세성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한 지원책이나 일반 영세 건설업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설계 방법의 개발도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현재 13.2%(2,417동)의 내진화 설계학교 비중을 2014년까지 5.5% 향상(1002동, 557교)시켜 우선 18.7%까지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보건복지가족부는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 등의 2,334개 건물 중 내진보강이 필요한 건물 445개소(19%)에 대해 우선적으로 올해부터 내진보강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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