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안전제도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조성 ‘시급’
적정한 노무비가 확보돼야 안전도 꽃 피운다
글로벌금융위기와 건설경기침체로 연이은 불황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가 최근 또 하나의 암초에 부딪쳤다. 최저가낙찰제의 확대가 바로 그것.

현재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적용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가 내년부터는 100억 이상 현장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업계와 관련 단체 등은 이것이 노무비 삭감을 불러오고 결국 무리한 공기단축, 미숙련 근로자 고용 등으로 이어져 산업재해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정부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강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건설산업과 건설안전분야의 정통한 전문가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연구위원을 만나 최저가낙찰제의 문제점과 그 대안, 건설재해예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건설업계가 최저가낙찰제의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도한 저가낙찰은 공사비를 부족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원도급사는 부족한 공사비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공기단축, 미숙련 근로자 고용 등의 자구책과 편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다양한 편법은 결국 건설품질을 저하시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건설산업 전반의 생산기반을 약화시킵니다.

Q. 건설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은 과한 예상이 아닐까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노무비를 언급해야겠군요. 과도한 저가낙찰은 결국 노무비의 삭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알다시피 건설산업은 수주산업입니다.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입찰자가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투찰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요?

재료량의 삭감은 부실시공과 관련되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또 재료값을 낮추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재료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삭감의 여지가 있는 것은 노무비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왜 노무비 삭감이 건설 발전 저해로 이어지나’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노무비가 삭감되면 건설업체의 경우는 고숙련 근로자를 쓰기가 어려워집니다. 임금이 비싸니까요. 때문에 미숙련 근로자나 외국인 불법 체류자 등의 저임금 근로자를 쓰게 됩니다.

이는 여러가지 악영향을 끼치는데, 우선 직접적인 영향을 보면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인력들이 대거 투입되니 당연히 시공능력이 저하되고, 건설업체의 부실화가 초래됩니다. 또 간접적인 영향을 살펴보면 임금이 저하됨에 따라 젊은 층의 현장기피현상이 더욱 심화됩니다. 때문에 건설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자체가 불투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Q. 최저가낙찰제의 확대로 건설재해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09년도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의 자료에 의하면 건설업의 산재다발 사업장 즉 재해율 상위 10% 현장 중 대다수가 최저가낙찰제로 발주된 공사입니다. 이는 곧 높은 재해율과 낮은 낙찰률 간의 상관관계를 짐작케 합니다.

왜 낙찰률이 낮으면 재해율이 높아질까요? 다시 말해 왜 과도한 저가낙찰이 산업안전에 영향을 주게 될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앞서 말했지만 저가낙찰은 노무비의 삭감을 불러옵니다. 노무비가 삭감되면 원도급사는 작업팀을 축소해 운영하게 되고, 무리한 공기단축과 미숙련 근로자의 투입을 시도하게 됩니다.

두 번째 저가낙찰은 말 그대로 저가로 공사가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산업안전보건관리비도 삭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당연히 산재예방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지겠지요. 안전교육은 형식적으로 실시될 것이고, 안전보호구의 지급과 안전시설의 설치도 소홀해 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정규직 안전관리자의 선임이 줄어든다는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Q. 위 질문에 더해 안전상 또 다른 문제점은 없을까요?

노무비 삭감으로 인한 무리한 공기단축과 불법재하도급 문제를 좀 더 깊게 짚어 보겠습니다. 건설생산과정에서는 하루에 투입되는 요소가 모두 비용으로 직결됩니다. 때문에 건설사들은 가능한 공기를 단축하려 노력합니다. 저가 낙찰현장에서는 이런 노력이 더하겠지요.

그럼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근로자들의 하루 작업량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되면 근로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을 감내해야 합니다. 결국 이것은 근로자들의 피로누적과 주의력 저하 등을 불러와 산재발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다음 불법재하도급 문제를 논하겠습니다. 건설산업은 다단계 하도급구조입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최저가낙찰이 확대되면 성실한 도급업체는 퇴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시공하는 성실업체의 경우 관리비와 사회보험료 등의 부담을 피할 수 없어 저가입찰에 대한 참가를 꺼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낮은 노무비의 일괄 하도급을 일삼는 부실업체는 활개를 치게 될 것입니다. 이들 부실업체가 과연 안전에 신경이나 쓸까? 사실상 건설산업에서 안전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Q. 건설재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건설현장에서 안전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산업안전정책 이외에도 고용관계 명확화, 근로경력 정보 구축, 적정 노무비 확보 등의 건설근로자 고용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 노무비의 확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발주자의 설계금액에 적정임금이 반영되고, 이것이 말단 근로자에게까지 적시에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정 공사비 확보에 대한 사회적 명분과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낙찰률과 무관하게 산안비를 확보하는 방안이 도입돼야 합니다. 그리되면 현장에서는 금액에 대한 부담이 없이 안전관리자를 확보할 수 있고, 안전교육도 내실있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안전보호구를 지급하거나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원활히 이행되겠지요. 이외 근로자의 이동성을 감안한 산업차원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Q. 재해예방을 위한 산업차원의 접근이라함은 무엇을 말합니까?

저는 안전모·안전화·안전대 이른바 3대 보호구의 지급과 기초건설안전교육의 실시, 정기건강검진의 실시 등을 현장이 아닌 산업차원에서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한건설협회나 건설근로자공제회 등이 주최가 되어 이들 사항을 실시하자는 것이지요.

산업차원에서 이들 사안이 실행되면 검증된 근로자들만 현장에 진입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보호구를 갖추고, 교육과 건강검진을 받은 양질의 근로자만이 현장에 오게 되니, 현장의 안전관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 현장의 안전관리자들 역시 안전 업무에 보다 충실할 수 있게 됩니다. 단지 상기 사항에 대한 확인 및 관리작업만 하면 되니까요. 즉 기존에 잡무로 쓰던 시간을 모두 안전점검 등 정말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활동에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비용인데, 이는 산재예방기금의 일부와 산안비의 일부를 갹출해 적립한 기금을 조성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산안비를 갹출하는 방법은 산재보험료 징수 시 임금채권보장기금과 함께 걷으면 될 것입니다.

Q. 사실 원수급자의 낙찰률 상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많은 편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낙찰률을 상향해줘봤자 원수급자에게 지급된 공사금액이 하수급자를 거쳐 말단의 근로자에게까지 제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지요. 현 업계 상황을 감안하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지 이 우려로 인해 상기 사항들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장기적으로 건설산업을 저해하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산재감소와 건설발전도 답보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정 건설재해를 줄이고 건설발전을 도모하려면 공사금액이 원수급자에서 근로자까지 제대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로 개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건설업계를 믿지 못해 처음부터 파이를 키우는 것 자체를 피하지 말고, 우선 파이를 키운 다음 모두가 적당하게 나눠가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Q. 위 답변에 조금 더 부연설명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가격경쟁을 지양하고 기술경쟁을 하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헌데 지금처럼 최저가낙찰제 하에서는 기술경쟁이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낮은 가격을 써서 수주를 받을 수 있는데 어느 건설사가 기술개발을 하고 공법개선을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현 건설업계의 구조를 신뢰하지 못해 낙찰률 상향이나 최저가낙찰제 반대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이 상당히 존재합니다. 이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처사입니다. 무조건 불신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개선책을 찾아 상생하는 길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합니다.

저는 그러한 개선책으로 원·하도급사가 적정한 임금을 근로자에게 주도록 제도로 규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미국의 ‘Prevailing wage’제도가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근로조건의 저하 또는 임금의 삭감 등을 막는 미 정부의 안전장치 중 하나로, 연방·주·시 차원의 공공공사에 적용되는 원가 반영의 기준이자 지역별 직종별 최저임금을 명시한 것입니다.

공공발주자는 Prevailing wage를 공사원가에 반영하고, 사업주는 근로자들에게 반드시 정해진 Prevailing wage를 지급해야 합니다. 만약 건설업자가 이를 위반하면 일정기간 동안 공공공사 입찰에 못 들어옵니다.
이를 통해 미국에서는 근로자의 임금 삭감을 통한 가격경쟁을 할 수 없게 됐고, 결국 기술과 개선시킨 공법으로 수주 경쟁을 하는 문화가 조성됐습니다. 공공공사 낙찰률도 대체로 90% 이상이 되면서 공사비가 적정해졌고,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안전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 임금 삭감 경쟁을 억제함으로써 전체적인 적정 공사비 확보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국 건설업체 전체의 파이를 크게 함으로써 원수급자-하수급자-근로자 모든 구성원의 상생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이에 맞게 안전도 큰 폭으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Q. 끝으로 우리 건설안전현황을 여타 선진국과 비교해 주신다면?

제도자체는 유사한 수준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선진국은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을 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제도는 있으되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시 가장 큰 원인은 노무비겠지요. 적은 노무비를 가지고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현장상황이 열악해지고,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전제도나 규정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일례로 추락위험지역에서 안전대를 착용해야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돈이기 때문에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틈 속에서 이것을 언제 풀었다 찼다 할 수 있겠습니까. 급한 대로 하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의 안전수준이 선진국에 다가서려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갖고 있는 안전제도가 현장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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