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따르기 어려워 길이 개탄하고 / 永慨難追古
이름에 걸맞지 않아 많이도 부끄럽네 / 多慙未副名
군이 찾아온 것은 자신에게 잘못이요 / 君來眞自誤
내가 권면할 것도 성실뿐이로세 / 我勸亦徒誠
백 번 삶아야지 명주실도 희어지고 / 百練絲能白
천 번 갈아야지 거울도 밝아지네 / 千磨鏡始明
늙은 나조차도 배움에 뜻 두었거늘 / 老夫猶有意
젊은 그대가 헛되이 살려는가 / 年少肯虛生

이황(李滉 1501~1570) <김응순 수재의 시에 차운하다[次韻金應順秀才]>《퇴계집(退溪集)》(한국문집총간 29집)


이 시는 1556년 퇴계 선생이 자신을 찾아와 도산(陶山)에서 수학하던 제자 김명원(金命元)에게 지어준 시이다. 당시 선생은 56세로 노년에 접어들고 있었고, 김명원은 23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선생은 김명원이 술을 좋아하고 독서를 게을리하는 것을 걱정하였다.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응순(應順, 김명원의 자)은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데도, 이전부터 독서를 열심히 하지 않는 듯하네”라고 말한 적이 있었고, <주계(酒誡)>라는 글을 지어 김명원의 지나친 음주를 직접적으로 훈계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퇴계는 이 청년의 남다른 자질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기대가 컸던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돌 속에 박힌 옥(玉)에 불과한 것이다. 퇴계는 이 시를 지어주며 젊은 제자에게 부단히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결국 김명원은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 김명원은 1559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다시 3년 뒤에는 문과에 급제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원수가 되어 왜적의 침입을 막는데 크게 기여했고, 결국 그는 공을 인정받아 정승의 지위까지 올랐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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