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不官, 官哉官哉 (관불관, 관재관재)
수령(守令)이 수령답지 못하다면 수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변종운(卞鍾運 1790~1866)
〈송심노성서(送沈魯城序)〉《소재집》(한국문집총간 303집) 
옛날 영남(嶺南) 어느 고을의 수령이 가야산(伽倻山)을 유람하다가 제법 박식하다고 소문난 노승(老僧)을 만나 장난스러운 질문을 했다.

“대사(大師)께서는 영남의 수령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십니까?” 이 질문에 노승은 한 명뿐이라고 대답했다.

그 수령은 웃으면서, “산에만 계시다 보니, 수령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승은 “수령이 수령다워야 수령이지 수령이 수령답지 못하면 수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영남의 수령들 가운데 청렴하고 지혜로우면서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는 사람은 개령(開寧) 현감뿐입니다. 그래서 한 명뿐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수령은 겸연쩍어하며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 고사는 조선 후기의 문인(文人) 변종운 선생이 노성(魯城) 현감으로 부임하는 심노숭(沈魯崇)을 전송하며 지어준 글에 실려 있는 것이다. 《논어》에 “고가 모나지 않다면 고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고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을 차용한 것이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임금이라고 할 수 없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신하라고 할 수 없고,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면 부모라고 할 수 없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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