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숫대에 잠자는 까치 한 마리(一鵲孤宿?黍柄)
밝은 달 흰 이슬 논물 드는 소리(月明露白田水鳴)
고목 아래 초가는 둥근 바위 같고(樹下小屋圓如石)
지붕 위의 박꽃은 별처럼 환하다(屋頭匏花明如星)

박지원(朴趾源 1737~1805)〈효행(曉行)〉《연암집(燕岩集)》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아직 달도 밝고 길섶의 풀에 맺힌 새벽이슬이 발에 차인다. 길 옆 콩밭에 드문드문 서있는 수수대궁에 무리를 떠난 까치 한 마리가 잠들어 있다. 또 산골 다락 논에는 물꼬와 봇도랑으로 흘러드는 논물 소리가 음악소리처럼 재잘댄다. 저편에는 두서너 집이 있는 마을이 있는데 오래 묵은 감나무 아래 보이는 작은 초가는 지붕이 낮고 낡아 마치 시커멓게 엎드린 바위처럼 보인다. 그 지붕위에 다문다문 핀 박꽃은 마치 저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작고 하얗기도 하지!”

이 시는 새벽에 길을 걷다가 본 일상적 농촌 풍경을 소재로 하여 그 진경(眞境)을 묘사한 시이다. 이 시에서 박지원은 자신의 감정은 배제하고 그 양상만을 묘사해 놓고 있다. 소재도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내용도 막연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 풍경을 다루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한시에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시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참신한 표현을 위해 율격을 맞추지 않고, 막연한 감정을 발산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차분하게 사물을 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일상에서 접하는 삶의 실경(實境)에서 시적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시들을 통해 지나간 시대의 풍속과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인들의 미의식 또한 살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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