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달영 한국방송문화산업기술인협회장(Miracle special effect 대표)

“8시간 일하면 1시간이라도 쉬게 해야”
종사자 처우개선 및 근로환경 개선에 앞장설 것


방송문화산업분야는 장시간 근로가 일상화 되고, 안전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 등이 부재해 그간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또한 관련 법·제도가 미비해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토대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안전보건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는 것.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업계에 종사 중인 기술인들, 이른바 현장 스탭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은 이달 초 한국방송문화산업기술인협회(방송통신위원회 산하)를 발족하고, 향후 방송문화산업에 안전관리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드디어 안전한 방송문화산업 구축을 위한 첫발이 내딛어 진 것이다.

협회를 이끌고 있는 소달영 회장을 만나 방송문화산업의 안전보건현실과 그 개선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협회와 회장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해외 가수의 내한 공연 등 굵직한 행사 때마다 일본 등 선진국의 공연제작관련 전문 인력을 초청하는 한편 관련 장비도 임대해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의 공연제작시스템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거의 100%에 육박할 정도로 내수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은 물론 동남아, 일본, 유럽 등지에 방송공연제작장비와 기술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외형적 성장에만 몰두한 결과 체계적인 근로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것이지요. 때문에 그간 제작현장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해왔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동안 방송문화산업기술분야는 이같은 문제점을 제기조차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하다보니 거대 지상파 방송사, 대형 기획사 등의 힘에 밀려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정부마저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사실상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에 내몰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986년부터 업계에 종사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다 지켜봐왔습니다. 늘 안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중 2007년 모 현장에서 낙하하는 대형 스피커에 한 음향 기술인이 맞아 사망하는 사고를 목격하게 됐습니다.

그 순간 이제는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결심을 확고히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협회 창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이번에 드디어 뜻이 맞는 200여개 업체와 함께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Q. 협회의 발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일상화된 장시간 노동, 부실한 안전보건관리체계 등으로 인해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왔던 방송문화산업분야에 안전보건을 심는 공식적인 시발점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방송문화산업기술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업계는 분야의 특수성과 영세함으로 인해 단일화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협회 발족을 계기로 앞으로는 하나의 업체가 아닌 하나된 업계의 힘으로 권익신장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됐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방송문화산업기술인의 체계적인 양성을 위한 발판을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방송문화산업기술인이란 방송·공연 제작 시 무대 설치, 조명, 음향, 구조물, 전시, 특수효과, 영상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제작 인력을 말합니다. 분야도 다양하고 각 분야 모두 전문성이 상당한데 현재 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보니 주요 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 및 신규인력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된 상황입니다. 즉 산업의 근간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종사자 단체인 협회가 결성된 만큼 향후에는 각 분야간 정보 및 기술공유, 관련 정부기관의 업무 협조 등이 한층 더 수월해져 전문적인 인력양성체계의 구축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방송문화산업의 안전보건실태에 대해 조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흔히 방송문화산업하면 방송국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대규모 공연장에서 이뤄지는 행사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에서 실시되는 행사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만약 100개의 행사가 있으면 1개 정도가 그곳에서 열린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행사나 공연의 대부분은 야외 현장에서 이뤄집니다. 기공식, 지역 축제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실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건물 안에 있는 대규모 공연장은 안전상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바로 야외 현장, 체조경기장 등 비공연장에서 이뤄지는 행사들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보고 공연시설을 만들라고 합니다. 이 비상식적인 일을 우리는 그동안 가능한 일로 만들어왔습니다.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고 3일 내내 밤을 새면서 말이지요. 상황이 이렇게 열악한데 안전보건이 설자리가 있었을까요? 당연히 없었습니다.

Q. 공연장은 다중이용시설물인데, 어느 정도 정부의 관리감독이 있지 않나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연법과 국토해양부의 건설관련법 등에 공연장 안전관리에 관한 법령이 조금 담겨 있긴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공연법은 주로 대규모 공연장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건설관련법은 현장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3일 안에 30m 규모 시설물을 설치해야 하는데 언제 법령에 따라 지질조사를 하고 구조검토를 하겠습니까. 또 마찬가지로 당장 한 시가 급한데 언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체계적인 절차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겠습니까. 사실상 우리 업계는 안전보건에 있어서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작업 중 발생하는 주요 재해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주요 지상파 방송국의 공연이나 정부 및 지자체의 공연 등 대부분의 행사가 대략 일주일을 앞두고 제작업체에 통보가 됩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작업시간으로 3일 정도가 주어집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공연을 위한 모든 작업을 완료해야 하다 보니 사실상 3일을 꼬박 새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을 못자니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고, 설비나 장비의 설치도 완벽을 기하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때문에 장비 설치 중 추락하는 사고, 전력을 연결하다 감전을 입는 사고, 떨어진 무대 장치에 맞는 사고 등 다양한 재해가 비일비재하게 발생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집계된 바 없지만 업계에선 대략 10번의 행사 중 1번꼴로 사고가 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Q. 외국의 경우는 방송문화현장의 안전관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일단 대다수 선진국의 경우는 야외공연장의 설치·운영과 관련해 법령이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업계의 특성을 반영한 법령을 제정, 공연의 계획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안전관리에 나서고 있는 것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경우는 방송문화산업기술인협회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데다 그 권한도 막강한 편입니다. 심지어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떨어지는 중국이나 태국 등지에도 협회가 설립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듯 협회가 존재하고 권한이 세다 보니 이들 국가의 경우는 조명 하나를 건드릴 때도 관련 기술인의 허락을 받을 정도로 빈틈없는 안전관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새로운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제작현실은 아직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을 뿐입니다.

Q. 방송문화산업기술인의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은 업계의 특성을 반영한 법령의 마련이 시급합니다. 합리적인 제작시간, 적정한 휴식 시간, 장비의 안전한 설치 및 검사 방법, 안전교육 실시규정 등이 법제도상에 명시돼야 합니다. 그리하여 법에 의거, 관리가 부실한 제작현장에는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하게 안전보건을 심어나가야 합니다.

이를 강조하고자 예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최근 저희는 광고주나 행사 주최 측에 8시간 일을 하면 1시간의 휴식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헌데 법적 규정이 없다보니 그 어느 곳도 수용해주는 곳이 없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방송문화산업현장에 안전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법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이를 시행할 계획이 없거나 여건상 어렵다면 우리 협회에 그 역할을 위임해 주길 희망합니다.

산업의 특성을 잘 아는 우리 협회가 안전규정을 마련하여 업계에 보급하고, 현장을 돌면서 보호장구 착용 등 안전규정의 준수를 강제해 나가겠습니다.

Q. 협회의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선은 작업에 대한 표준화를 정립시키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공연장을 만들 때는 트러스로 기본 뼈대를 구축한 다음 무대, 조명, 음향, 영상, 특수효과 순으로 설치작업이 진행돼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안전성을 확보해가면서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공연장 설치작업이 시작하는 첫 날 모든 업체가 다 달려와 서로 먼저 작업을 하겠다고 다투는 상황입니다. 촉박한 설치 시간이 불러온 폐해지요.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작업에 대한 표준화 작업을 먼저 진행하고, 이를 업계에 적극 보급해 나가려 합니다.

또 주요 사고에 대한 종사자들의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고 재해의 위험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안전사고사례집과 안전작업 매뉴얼도 작성하여 배포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관련 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총력을 기할 방침입니다. 현재 과도한 작업시간, 업무량 대비 턱없이 부족한 임금 등으로 인해 전문 인력의 유출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고급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고, 우수한 업체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Q. 전국의 근로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우리 방송문화산업기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직 신념과 자긍심만으로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는 방송문화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근로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환경이 조성되고 처우가 나아져야 전문 인력이 들어올 것이고 그래야 산업이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작업현장인 공연장은 수많은 대중이 몰리는 곳으로 자칫 작은 사고도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여기에는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 저희의 잘못도 크지만 드러나지 않는 현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의 제한적인 시선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무대 위의 연예인 못지않게 음지에서 일하는 저희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확고한 안전보건체계의 구축을 발판으로 우리나라가 문화뿐만 아니라 문화산업기술도 수출하는 진정한 문화강국이 될 수 있도록 성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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