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화씨

 


환한 미소가 가득한 앳된 얼굴, 공을 주시하는 예리한 눈빛, 반대편 코트를 향해 매섭게 내리꽂는 스트로크, 테니스코트를 울리는 당찬 기합 소리.

처음 마주친 김민화(36세)씨의 모습은 패기 넘치는 여자 테니스 선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향해가면서 또 다른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휠체어였다. 휠체어에 의지한 몸으로 그렇게 코트를 헤집고 다녔다니. 놀라움과 또 한편으로는 경외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테니스 라켓을 손에 쥔지는 약 1년 정도. 그전까지 그녀는 산재의 고통 속에서 슬픔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에선 조금의 어두운 그늘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눈물로 가득했던 마음을 자신감으로 채우고, 다시 한 번 인생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우뚝 선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일까? 따스한 봄바람이 대지를 감싸던 3월의 어느 날, 밝은 미소 뒤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지난 일기를 들어봤다.

그녀의 삶은 늘 ‘대기상태’

지금으로부터 4년여 전 김민화씨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모 척추전문병원에서 간호사로 재직 중이었다. 경력 10여년이 훌쩍 넘는 수술실 수간호사였다.

서른을 갓 넘은 나이에 그런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 밤낮이 뒤바뀌는 교대근무를 기본으로 주말, 휴일, 명절에도 마음 편히 쉬는 날이 없었다. 언제라도 연락이 오면 즉시 나가서 수술을 도와야하는 일이 그녀의 업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은 늘 ‘대기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열과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감기려니 생각하고 아픔을 참으면서 업무에 집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결국 그녀는 현기증과 함께 쓰러졌다.

입원하고 1주일이 지나자 하반신 마비가 시작됐고, 더 이상 그녀는 두발로 걸을 수 없었다. 2008년 5월 그녀의 나이 서른 두 살때의 일이다.

전환점이 된 테니스와의 만남

늘 바쁘게 살았던 그녀였다. 한순간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됐다는 사실은 그녀를 끝없는 슬픔의 나락으로 이끌었다. 삶에 대한 애착도 희망도 사라졌다. 그렇게 병원에서 2년 반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갈수록 깊어지는 우울증과 간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에 대한 후회뿐이었다.

치료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의 병원 생활은 무의미했다. 퇴원을 결심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힘겨운 고민 끝에 돌아온 세상이었지만 반기는 이도 그녀의 자리도 없었다.

외로움과 슬픔에 익숙해져갈 무렵 한 지인의 소개로 테니스장을 찾게 됐다. 이곳에서 그녀는 장애인 테니스를 알게 됐고, 새로운 친구들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서울시장애인테니스협회 이성룡 전무이사와의 만남은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제시해줬다. 이 전무이사는 그녀에게 직접 테니스를 가르쳐준 것은 물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줬다.

제2의 인생을 열다

지난해 봄 그녀는 본격적인 테니스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우려가 섞인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네가 정말 테니스를 할 수 있겠어?” 지인들은 반복해서 물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환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그 뒤로 일 년이 지났다. 이제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몸이 건강해진 것은 물론 우울증에 지쳐있던 마음도 긍정적으로 거듭났다. 또 시합을 위해 지방을 다니다보니 자신감도 부쩍 늘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집밖으로 나서면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였다.

현재 김민화씨는 올해 열리는 장애인 전국체전의 서울시 대표 선수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다. 이미 산재라는 거대한 장애물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기에 그녀는 운동과 삶 자체를 즐길 뿐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난 ‘서서 사는 삶’과 ‘앉아서 사는 삶’ 두 가지의 인생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긍정적인 마음과 운동을 향한 열정으로 제2의 삶을 화려하게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녀의 계획은 테니스를 계속 즐기는 것과 채 꽃피우지 못한 영문 번역가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산재의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용기라면 분명 이 꿈을 머지않아 현실로 만들 것이다. 또한 그녀가 꿈을 향해 걸은 그 길은 많은 산재근로자들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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