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域逢春未覺春 이역에서 맞는 봄은 봄인 줄 모르겠더니
朝來驚見雪花新 이 아침에 내리는 눈꽃 놀라서 바라보네
莫將外物爲欣慼 외물에 기쁘지도 슬프지도 말지니
春意分明在此身 봄기운 분명히 내 몸 안에 있으니

최명길(崔鳴吉, 1586~1647)〈춘설유감(春雪有感)〉《지천집(遲川集)》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 조선 조정은 전쟁을 거듭하다가 결국 남한산성으로 피신했고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와 강화를 주장하는 주화파와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척화파가 극심하게 대립했는데, 조정은 어쩔 수 없이 주화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이후 청나라로 잡혀가 죽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시를 지은 최명길은 주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명나라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 결국 이 일이 발각되어 청나라로 잡혀가 심양(瀋陽)에 억류됐다. 이 시는 바로 이때에 지어진 작품이다.

심양은 북쪽의 내륙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무척 추운 지역이다. 이 시에서 최명길은 절기상 봄이 왔는데도 온화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눈까지 내려 도무지 봄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작자는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억류된 몸으로 모든 것이 절망스러움에도 따뜻한 봄의 기운을 마음속에서 찾아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진정한 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입춘은 물론 우수, 경칩도 다 지나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봉오리를 드리우고 있으니, 외적 환경은 바야흐로 봄이 된 듯하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외물(外物)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봄이 진정한 봄일 것이다. 지금 이 때 누구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좋겠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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