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 서울특별시장애인농구협회 전무이사

1992년 1월 한창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모 플라스틱 분쇄기 생산회사에 다니던 최영호 씨는 대전 신탄진의 한 업체로 제품 배달을 갔다. 명색이 서울사무소의 소장이었지만, 작은 회사에선 누구나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는 신념으로 늘 앞장서던 그였다.

열정이 과했던 것일까. 그곳에서 그는 높이 1.5미터, 무게 800kg 정도의 플라스틱 분쇄기를 직원들과 옮기던 중 사고를 입었다. 이동 중이던 분쇄기가 쓰러져 그의 허리를 덮친 것. 중장비를 이용해 옮겨야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직원들끼리 운반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사고가 나자 직원들은 급한 마음에 응급조치도 없이 그를 무작정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던 도중 그는 점점 다리의 감각이 없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흡한 응급조치가 피해 키워

힘겹게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는 하반신 마비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내렸다. 게다가 대형병원에서나 치료가 가능하다며 진료를 거부했다. 결국 그는 7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뒤로 병원에서만 꼬박 10개월을 있었다. 처음 침대에 누웠을 때에는 영구적인 장애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일반적인 골절 같이 몇 개월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그의 다리에는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후 주변 사람에게서 영구적인 장애를 가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의 마음은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또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그를 끝없이 괴롭혔다.

“척추를 다치면 전문 응급요원의 처치 하에 병원으로 이송돼야 하는데, 저는 그런 조치를 받지 못했지요. 응급조치만 잘 됐다면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진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새 생명을 불어넣어준 휠체어 농구

그의 나이 서른. 신혼에다 딸아이는 막 돌을 지나 귀여운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한창 어울려 놀아줄 때였는데 늘 앉거나 누워서 슬픈 눈으로 아이를 지켜만 봐야하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가족들을 위해서 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반신 마비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첫 도전은 자동차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사고로 인해 장애가 생기면 면허시험을 다시 봐야 했다. 즉 운전면허증을 새로 따야 했던것.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장애인을 위한 운전면허학원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주변의 소개로 한 장애인에게 운전을 배우게 됐다. 이 분과의 만남이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운전을 가르쳐주던 그 장애인은 어느 날 그를 삼육재활원으로 데려가 휠체어 농구를 소개해줬다. 농구라면 그 전에도 많이 좋아했었기에 처음 본 휠체어 농구에 그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그곳의 문을 두드렸다.

휠체어 농구는 그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줬다. 많은 장애인들과 어울려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게 된 것. 다시금 사회생활을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특히 휠체어 농구의 경우 다른 어떤 운동보다 호흡이 필요한 운동이다. 서로 간에 마음을 터놓고 같이 어울리는데 더 없이 좋은 운동이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재활에 대한 정보, 그리고 장애인으로써 살아가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게 됐다.

“여타 장애인 종목이 정적인데 비해 휠체어 농구는 매우 동적인 운동입니다. 그만큼 많이 움직이고 사람들과 많이 대화할 수 있는 운동인 것입니다. 운동을 활발하게 하다보니 삶에 자신감이 붙었고 살아가는 재미도 느끼게 됐습니다. 절망적인 마음에서 드디어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휠체어 농구 인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재능부족을 실감해 선수로는 오래 활동하지 않았지만 선수생활 이후 지도자를 거쳐 작년 초까지는 대한장애인농구협회 이사직을 맡았었다. 이어 작년에는 서울시장애인농구협회 전무이사로 재직하면서 장애인농구에 대한 후원과 지원을 아끼고 있지 않고 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산재 극복의 길

운동으로 제 2의 삶을 활짝 연 최영호 씨는 목표가 뚜렷하다. 절망 속에 있는 산재근로자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 세상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 싶다는 것.

대표적으로 그는 서울시장애인농구협회 차원에서 올 7~8월에 초보자 캠프를 열려고 준비 중이다. 규모가 큰 재활 병원 및 시설을 다니면서 선수들을 불러 모으려 계획하고 있다.

“장애인이라서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농구 외에도 여름에는 수상스키도 탈수 있고, 또 장애인용 자전거도 탈 수 있습니다. 운동이 힘들다면 여행 등을 통해 친구들을 사귀고 대화하면서 세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단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산재근로자들이 모르고 있거나 그러할 자신이 없을 뿐인 것이지요”

그는 다치기 전에 바라보던 세상과 휠체어에 앉아서 바라보는 세상에 바뀐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바뀔 뿐이라는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받았으면 그것을 인정하고 밖으로 나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길 모든 산재근로자들에게 당부한다. 그것이 육체적 정신적인 질병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는 자신있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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