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 국립한경대학교 안전공학과 겸임교수

연구실 현실 반영해 연안법 개정될 필요 있어 

지난해 9월 10일부터 연구실안전관리법 개정안(이하 연안법)이 본격 시행됐다. 이 법에는 연구실안전환경관리자 지정, 안전환경관리자 전문교육 신설, 중대사고 발생 시 연구주체의 장의 보고의무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어, 시행되기 전부터 연구실안전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끌 정책으로 주목 받았다.

실제로 연안법이 시행된 지 7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이 법에 따라 각 연구실에는 안전관리체계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보다 내실 있는 연안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법에 연구실의 특수성이 더욱 많이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

본지는 연안법과 관련해 법이 제정될 때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연구를 해 온 한경대 이재우 교수를 만나, 앞으로 연안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또 산업현장의 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봤다.

 


Q. 먼저 교수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안전분야를 전공했으며, 졸업 후에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여 현장에서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직접 발로 뛰었습니다. 그러다 2003년 보다 깊은 지식을 얻고자 안전컨설팅 사업 부장직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왔지요.

이후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현재의 국립한경대 안전공학과 겸임교수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직의 수행과 함께 여러 민간재해예방기관에서 안전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안전과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실태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대형사고가 발생해야 그와 관련된 각종 법이 제정되고 강화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타워크레인 전도사고, 리모델링 붕괴사고 등 대형사고가 터진 후에 관련 법이 제·개정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지요.
이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태’는 산업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해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끔 안전교육을 하기 위해 제조업 현장에 가면 유난히 안전과 관련된 설비가 잘 되어 있는 부분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적마다 저는 ‘혹시 예전에 이 부분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이같은 현실을 학문적인 시각에서 설명하자면 우리나라는 안전과 관련해서 후행지수가 너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그때 가서야 개선에 나선다는 것이지요.

물론 사고가 난 후에 문제점을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를 방치해 놓고 있다가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본질적으로 안전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전과 관련된 선행지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유해·위험 요소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이를 시정해 나가는 노력을 더욱 많이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목표로 하는 안전선진국으로의 진입이 더욱 빨라질 수 있습니다.

Q. 연구실 안전과 관련해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안법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연구실 안전과 관련해서 연안법이 제정·시행된 것은 분명 획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실 안전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 개선돼야 할 점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안법이 연구실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안전시설과 관련된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여타 연구실에 설치돼 있는 흄후드(fume hood)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설비는 유독성, 폭발성 증기가 발생하는 실험을 할 때, 이 증기를 빨아들여 밖으로 배출하는 설비입니다. 즉 연구원들의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장치인 셈이지요.

대부분의 흄후드는 5m/s의 속도로 증기를 빨아드리도록 설계가 돼있습니다. 헌데 이 속도로 가동되면 와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유독성 증기가 다시 연구실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연안법에는 이런 부분이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외국의 경우는 흄후드의 가동 속도가 3m/s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설치하고 나면 반드시 드라이라이스 등을 이용해 와류가 생기는지를 확인토록 하고 있습니다.

비단 흄후드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실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설비인 아이워시, 세이프티샤워 등도 가이드라인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허점들을 볼 때 연안법이 연구원들의 안전을 확보키 위한 진정한 법적장치로써 역할을 하기 위해선 아직도 보완할 점이 많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Q. 위 질문과 관련해서 제도적으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연구실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연구소는 자기들의 연구시설을 공개하는 것을 굉장히 꺼립니다. 폐기물 하나도 보여주려고 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왜냐하면 어떤 설비가 들어서 있고, 어떤 폐기물이 나왔는지만 봐도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어디까지 연구가 진행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구실에 어떤 설비가 들어서 있는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등에 관한 실태조사를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어찌보면 지금 연안법이 미완에 머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저는 먼저 연안법에서 공통적인 그리고 기본적인 설비에 대해서만이라도 완벽하게 사용, 설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안된다’라는 식이 아닌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처럼 철저하게 설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하나씩 늘려나가는 것이 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Q. 실험실과 연구실에서의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일반 산업현장과 달리 연구실에는 각종 유해·위험물질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화재, 폭발 등의 사고 위험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고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치명적인 위험상황은 연구실에서 실험 중이던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물질이 외부로 노출됐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게 집단발병이 되고 나서야 인체에 유해한지 발견하게 됩니다.

연구실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숨겨진 위험까지도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연구실 안전만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이 설립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가 이 업무를 맡고 있지만 보다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업무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Q.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의식수준이 낮기 때문에 사고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이 낮은 이유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안전교육에서 그 문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맹률이 낮고 교육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안전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들 교육의 대부분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고자 깜짝 놀랄만한 일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건설현장에서 강의할 때의 일입니다. 근로자들에게 “안전모를 쓴 채로 5층에서 거꾸로 떨어지면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지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살 수 있다”고 답한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모자 하나를 썼다고 5층에서 떨어진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목이 꺾여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사례는 형식적인 교육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저 이론적으로만 안전모에 추락에 대비한 기능이 있다고 교육을 시킨 결과인 것입니다. 근로자들이 처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 질문에 “사고자는 사망을 했을 것이고, 이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안전대를 착용했어야 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한다면 보호구 하나를 교육할 때도 재해가 어떻게해서 일어나고, 왜 이 보호구 하나를 착용해야 하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어야만 합니다.

Q. 그렇다면 안전교육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현재 대부분의 안전교육은 집체교육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들 교육을 보면 교육이 시작되기 전 또는 중간 휴식시간에는 재미있는 영상을 틀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로자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영화나 개그 등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육의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휴식시간에 시각·청각적으로 큰 자극을 받았는데 교육내용이 머리에 들어오겠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명상기법을 사용합니다. 안전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등을 들려줌으로써 피교육자들의 심리를 평온하게 한 후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지요.

제가 그동안 안전교육을 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이런 절차로 교육을 진행했을 때가 자극적인 방법으로 근로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때 보다 교육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Q. 마지막으로 재해예방을 위해 사업장 관계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안전은 점검의 방식이 아닌 감사(監査)로 확보돼야 한다는 말을 산업현장의 모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라고 하면 그 특유의 억양 때문에 흔히 반감을 갖는데, 사실 감사에는 처벌보다는 시정의 의미가 더 큽니다. 즉 어떤 부분이 잘못됐으니 바꾸라는 것이지요.

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점검에는 단순히 검사하는 정도의 의미만 담겨 있습니다. 때문에 안전점검이 아닌 안전검사가 이뤄져야 보다 실효성 있는 안전이 확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사업주 여러분께는 산재보상에 소요되는 직접비보다 간접비를 더 고려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산재가 발생해서 단순히 보상에 소요되는 직접비보다 공기지연, 기업체 이미지 훼손 등의 간접비에 드는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러 연구결과에서도 증명이 됐지요. 일례로 호주에서는 이 간접비가 직접비의 4~7배 가량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업주분들께서는 ‘안전시설에 투자하고, 근로자 안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이득’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근로자 여러분들은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근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애를 갖게 됐을 때의 고통, 그리고 그에 따른 가족의 고통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근로자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평소 불안전한 행동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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