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所賢之者, 當其時有見其失而非之者 (소소현지자, 당기시유견기실이비지자)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던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잘못하는 것을 보고 나쁘게 여길 수가 있으며,

素所未賢者, 或於後有見可敬而禮之者 (소소미현자, 혹어후유견가경이례지자)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혹 뒤에 존경할 만한 일을 보고서 그를 존경하는 수도 있다.

이규보 (李奎報) <유자후가 《국어》를 비난한 것을 반박함[非柳子厚非國語論]>《동문선(東文選)》

‘국어(國語)’는 춘추 시대의 나라별 사서(史書)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저자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국어’의 일부 기록에 대해 유자후(柳子厚)는 비난을 했고, 이규보는 이에 대해 비난할 바가 아닌데도 비난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기록이 이처럼 문제가 됐을까. 국어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진(晉)나라 영공(靈公)이 나쁜 짓을 일삼자 진(晉)의 대부(大夫) 조선자(趙宣子)는 임금에게 이에 대해 간(諫)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공은 역사(力士)인 서예에게 조선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서예가 조선자의 집에 가서 보니, 아직 새벽인데도 조선자는 관복을 벗지 않은 채 앉아서 밤을 새고 조회에 나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서예는 그 충성심에 감동돼 감히 조선자를 죽이지 못하고 자기 몸을 나무에 부딪쳐 자살했다.

유자후는 이 기록에 대해 “조선자가 임금에게 수많은 간언을 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는데, 서예는 어찌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조선자의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훌륭하다고 생각했는가. 이것은 조선자가 나라를 위해 애섰던 큰 덕보다는 서예의 공경심이라는 작은 태도로 화를 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좌씨는 문장을 만드는데 능란해 말을 만들어놓은 것이다”라며 좌구명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에 대해 이규보는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던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잘못하는 것을 보고 나쁘게 여길 수가 있으며, 평소에 훌륭하게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혹 뒤에 존경할 만한 일을 보고서 그를 존경하는 수도 있다”라는 말로 반박했다.

우리는 이규보 선생의 이 말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선입견 혹은 편견의 문제가 그것이다. 서예가 이날 아침 조선자의 행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보았다면 조선자는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니 그 훌륭함이 보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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