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학의 향기, 백마강의 안개비
우리문학의 향기, 백마강의 안개비
  • 승인 2012.10.24
  • 호수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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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江山空復空, 夕陽惟有一蓑翁
浮家不管滄桑事, 數曲漁歌細雨中

백제의 강산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석양에 다만 삿갓 쓴 늙은이 하나
강호에 떠도는 몸 세상사와 무관한데, 뱃노래 슬픈 가락 이슬비 속에 들리네.

정규한 (鄭奎漢 1751~1824)
<차수북정팔영운(次水北亭八詠韻)> 중 마강연우(馬江煙雨), 《화산집(華山集)》 권1

정규한은 자는 맹문(孟文)이고, 호는 화산(華山)이다. 공주(公州) 출신으로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이다.

정조 4년(1780)에 진사시에 합격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 과거공부보다는 학문에 전념했다. 하지만 후에도 노론 유생들의 연명 상소에 꾸준히 참가하고 대신 상소를 짓기도 했다. 이를 보면 위 시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사와 무관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는 문장으로 이름을 떨쳐 성담의 문하 오백인 중에서 문장제일(文章第一)로 손꼽혔다. 위 시는 부여의 백마강 가에 있는 수북정을 두고 지은 것으로,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수북정팔경(水北亭八景)>에 차운한 것이다.

<상촌집(象村集)>권19에 실린 원시(原詩)는 다음과 같다.

오백년 그 세월이 한바탕 꿈이런가(五百年間一夢空)
이끼 낀 돌 지금은 고기 낚는 영감 것이네(苔磯今屬釣魚翁)
제멋대로 오고 가는 외로운 돛단배가(孤帆隨意往來穩)
푸른 물결 가랑비 속을 뚫고서 들어가네(穿入碧波煙雨中)

원시와 차운시를 비교하며 감상해보면, 백제의 흥망성쇠를 안고 유구한 세월을 흘러온 백마강가에서 느끼는 허망한 심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이후 시상의 전개에서는 시를 감상하는데 있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이점이 발견되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