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중에는 바둑을 두니, 아픈 사람이 맞나 싶고
한가할 때는 시 짓느라 애를 쓰니, 또한 한가롭지 않네.

한가롭길 구하고 요양하겠다는 것, 다 소용 없으니
한껏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네.

(病裏圍碁如不病, 閑中覓句亦無閑.
求閑養病都無用, 嬴被旁人拍手看.) 

서거정 (徐居正 1420~1488) 〈사가시집(四佳詩集)〉권13《사가집(四佳集)》

사가 서거정은 조선 초기의 알아주는 문장가였다.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쓰인 문장의 거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다 보니, 좀처럼 한가로운 틈이 없었다. 어쩌다 쉰다는 것은 병이 나거나 특별히 휴가를 얻었을 경우에만 가능했다. 위의 시는 그 때 지은 것이다.

시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과연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이 도래했을 때 과연 제대로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는지? 누구나 한가로운 삶을 갈구하지만 정작 한가로워졌을 때, 그 한가로움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도 한번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마침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 왔다. 한가로움을 즐기는 연습도 해 볼 겸 가까운 교외로라도 나가보는 건 어떨까? 잘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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