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고 빨간 한 폭의 비단 靑紅一段錦
직녀 손에서 분명 나왔지 應出織女手
견우의 옷을 만들고 싶어 欲作牽牛衣
비갠 하늘에 빨아 널었지 洗掛雨後天

정희량(鄭希良, 1469~?)「홍(虹)」『허암유집(虛庵遺集)』

정희량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해 ‘예문관봉교’등의 관직을 지낸 인물이다.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돼 의주(義州)로 유배를 갔다가 3년여 만에 사면돼 풀려났는데, 그 이듬해 어머니의 상에 시묘를 하다가 강가에 의복을 남겨둔 채 종적을 감췄다. 당시 그의 나이 34세였다. 죽은 것을 가장해 은둔하였다거나 이름을 바꾸고 중이 되었다는 등의 얘기가 전해지지만 모두 확실치 않다.

이 시에서 정희량은 비온 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고 직녀가 견우의 옷을 짓기 위해 깨끗이 빨아 널어놓은 비단과 같다고 표현했다. 이런 비유적인 표현만 봐도 그는 가히 당대 시인들과 어깨를 견줄만 하다.

헌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정희량은 이 시를 여섯 살 때 지었다는 것이다. 여섯 살이면 지금의 아이들은 한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닐 나이다. 요맘때쯤의 아이들이 24개의 자모(子母)로 구성된 한글을 깨우쳐 일기를 쓰고 동시도 짓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문을 문자로 사용하던 조선시대에 한시(漢詩)를 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비유적 표현까지 사용했던 것을 보면 정희량은 가히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여섯 살 어린 아이의 손에서 나온 예쁜 한시가 5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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