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성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팀 주장 / 제10회 밴쿠버 동계 패럴림픽 휠체어 컬링 은메달리스트

지난 3월 22일 폐막한 밴쿠버 동계 패럴림픽.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동계 패럴림픽 사상 두 번째 메달이자 구기종목 사상 첫 단체전 메달인 은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18위를 기록, 당초 목표(동메달 1개, 종합 22위)를 넘어선 성과를 거뒀다. 이같은 성공의 주역은 바로 휠체어 컬링 대표팀이었다. 하반신마비 장애 선수 5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전용 링크가 없어 급조된 빙상장을 떠도는 악조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연습에 매진, 금메달 보다 더 빛난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특히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학성 주장은 산업재해의 고통을 극복하고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해 더욱 많은 찬사를 받았다.


Q. 짜릿했던 올림픽 순간을 직접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사실 올림픽 전에 있었던 세계선수권 경기 등에서 꾸준히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려왔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세계 최대 스포츠 대전인 올림픽이었던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이 커져 좋은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예선전에서 독일을 9대2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한데 이어 예선 2위 미국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하자 해볼만 하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임한 결승전이었지만 역시 세계 최강 캐나다는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경기 초반부터 큰 점수 차가 났고 패색이 짙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직 이 순간만을 꿈꾸며 고된 연습을 해왔기에 ‘할 수 있다’ 믿었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막판 접전 끝에 8대 7, 1점차로 아쉽게 석패를 하게 됐습니다.

Q. 휠체어 컬링이란 종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휠체어 컬링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컬링이란 종목부터 설명해 드려야겠군요. 컬링은 ‘은반 위의 체스’라 불리는 동계 스포츠로, 각각 4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빙판에서 둥글납작한 돌(스톤)을 미끄러뜨려 표적(하우스) 안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경기입니다.

휠체어 컬링은 한 팀에 여성이 한 명 꼭 끼어 있어야 한다는 점(비장애인은 각각 남녀팀 분리)과 한 경기가 8엔드(비장애인 10엔드)라는 점 그리고 스위핑(빗자루를 사용, 얼음조각 등을 제거해서 공이 더 멀리까지 미끄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비장애인 컬링과 다릅니다.

Q. 컬링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처음 산업재해를 입고 그 고통을 잊고자 휠체어 농구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3년경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회로부터 종목 다원화 차원에서 휠체어 컬링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게 됐습니다. 호기심 차원에서 몇 번 경기를 관람했는데 볼수록 빠져들더군요. 그래서 저희 농구팀 일원들을 설득해 컬링팀을 창단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창단은 했지만 워낙 지원과 기반이 없다보니 연습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 국내에 컬링을 할 수 있는 링크가 태릉에 하나, 경북 의성에 하나가 있는데 장애인들에게는 갖은 이유를 대며 사실상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국가대표가 소집이 된 이후에도 훈련 장소를 찾아 전국 각지를 떠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 이번 올림픽 준비를 할 때도 수영장을 비워 만든 링크 위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지원도 저희를 많이 힘겹게 했었습니다. 비장애인 국가대표팀의 경우 1년 내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이 뒤따르고 있습니다만 저희는 세계선수권 등 큰 세계대회를 앞두고 겨우 20일여의 훈련일정이 배정될 뿐입니다. 게다가 참가경비나 훈련비도 상대적으로 적어 자비로 부족한 경비를 메우며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 포기를 할까하는 마음이 든 게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진다면 또 한 번 ‘장애’라는 벽에 무릎을 꿇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이 더 힘들어질수록 여건이 더 악화될수록 대표팀 동료들과 손을 맞잡고 서로를 격려하며 훈련에 더 매진했었습니다.

Q 산재를 입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고 경위를 들을 수 있을까요?

벌써 20여년 전인 1991년의 일이네요. 당시 저는 모 건설관련회사의 남해고속도로 건설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본격적인 도로공사에 앞서 현장 사무실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한창 작업을 하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제 옆에 있던 페로다가 작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페로다 같은 중장비의 경우 작동을 하려면 작업자의 지시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지시도 없이 갑자기 움직였던 것이지요. 후에 들어보니 중장비 기사가 졸다가 착각을 하고 오작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페러다의 버켓이 저를 위해서 아래로 눌러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척추에 손상이 왔고, 다신 두발로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불과 스물여섯이었지요.

Q. 사고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게 된 계기가 있다면?

여타 산재근로자분들이 그러하듯이 저 역시 처음엔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술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태반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대전에서 장애인 선수들의 농구시합을 보게 됐었습니다.

그 모습은 ‘난 장애인이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절 깨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장애인이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용기가 없어 못했던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길로 바로 원주에 돌아와 함께 농구를 할 팀원을 모집했고, 곧 팀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만들었던 농구팀이 나중에 컬링팀의 모체된 것이지요.

Q ‘안전’에 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사고를 입기 전까지 제가 아는 안전은 저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호구를 잘 착용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 당연히 안전은 저와 함께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고를 겪으면서 나만 안전을 한다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안전은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혼자만 하는 안전은 본인은 물론 현장의 안전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안전한 작업을 할 때만이 본인과 현장 근로자 모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컬링과 같은 스포츠만 해도 그렇습니다. 선수 한 명이 잘한다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는 없습니다. 팀원 모두가 협력하고 협동할 때 우수한 성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전을 원한다면 동료 근로자의 안전부터 챙기고, 주변의 위험요인을 앞장서 개선하시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배려는 더 큰 배려를 낳고 협동은 더 큰 협동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남을 위한 안전을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모두가 안전한 작업환경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Q. 스포츠가 장애인들에게 줄 수 있는 장점은?

 

산재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인분들이 스포츠 활동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육체적인 제약이 있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우려부터 하시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생각을 달리하시라는 말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스포츠를 단순히 육체적 활동으로만 보지 말고 재활치료로 보면 어떨까요? 스포츠는 여러 면에서 재활치료와 같은 효과를 냅니다. 신체적인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퇴화된 운동신경도 크게 회복시켜줍니다.
또 스포츠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 여러 선수와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해줍니다.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는 것이지요.

특히 산재근로자들 중에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 우울증 치료에 스포츠 활동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목표는?

금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긴 했지만 아직 저희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팀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보여주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고 연습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 한국 컬링의 긍지를 드높이고 싶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이 땅의 산재근로자분들 그리고 장애인분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꼭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Q 국민 여러분들께 한 말씀 하신다면?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을 바꿔나가시길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현대 사회로 갈수록 위험요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차량이 크게 늘어 교통사고의 위험도 높아졌으며, 산업의 공정도 매우 다양해져 그만큼 산재사고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환경 속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국민 여러분 누구나 예비 장애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애 발생의 위험이 높은 사회에 살면서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매우 심한 편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어느 누가 자신이 장애인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장애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아차하는 순간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이런 점을 명심하시고 직장에 산재근로자가 있다면 부족한 업무능력만을 탓하지 마시고 함께 근무해나갈 수 있도록 조금만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주변의 여타 장애인들도 용기를 잃지 않고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이 힘을 실어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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