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학의 향기 | 명분과 실질
우리문학의 향기 | 명분과 실질
  • 승인 2013.05.08
  • 호수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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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言雖固 亦宜有理(차언수고 역의유리)
이 말이 비록 답답하기는 하나 또한 이치에 맞는 부분이 있다

- 김정국(金正國, 1485~1541) 「척언」『사재집(思齋集)』

조선 성종과 중종 연간의 학자이자 관료인 사재(思齋) 김정국의 문집 속에는 관직 생활 중에 보고 들은 일화(逸話)와 당시 인물들의 야담(野談) 등을 만필(漫筆)식으로 기록한 ‘척언(摭言)’이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돼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한 수령(守令)이 있었는데 성품이 고집스럽고 남의 말을 잘 믿지 않았다. 어느 날 감사(監司)가 공문을 보내어 “생치(生雉) 몇 마리를 급히 바치라”고 하였다. 이에 수령이 아전에게 물었다. “이른바 생치라는 것은 산 채로 잡은 꿩이렷다?” 아전이 답하기를 “아닙니다. 마른 것을 건치(乾雉)라 하고 마르지 않은 것을 통상 생치라 합니다”라고 했다.

수령이 화를 내며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어떻게 ‘죽은’ 놈을 ‘살아있다’고 한단 말이냐? 내 이를 감사에게 아뢰겠다”고 말했다. 수령은 손수 붓을 들어 “생치는 저 하늘 높이 날아다녀 잡기가 어렵기에 우선 죽은 꿩을 바칩니다”라고 감사에게 글을 써 아뢰었다.

감사가 이 글을 보고는 크게 웃으며 “이 말이 비록 답답하기는 하나 또한 이치에 맞는 부분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령은 얼마 후 자리에서 쫓겨났다. ‘생(生)’이라는 글자가 경우에 따라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고 ‘마르지 않은 것’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령은 융통성 없이 자기 생각만 고집하다가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더니, 결국은 관직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이렇게 융통성 없이 세상을 살면 자기는 물론이거니와 남들은 또 얼마나 피곤할까? 더구나 직위가 수령이니 그 아랫 사람들의 고충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감사의 마지막 구절인 ‘이치에 맞는 부분이 있다’는 말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있다. 수령의 생각이 답답하긴 해도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인데, 그러고 보면 ‘생(生)’이라는 글자가 ‘살아 있는 것’을 뜻해야 한다는 수령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하다. 굳이 따지자면 살아 있는 것은 ‘생치(生雉)’, 죽은 것 중에 아직 마르지 않은 것은 ‘반건치(半乾雉)’ 혹은 미건치(未乾雉), 상하지 않게 얼려서 보관했다면 ‘냉동치(冷凍雉)’, 마른 것은 ‘건치(乾雉)’라고 부르면 될 터이다.

그렇다면 수령의 그 고집은 단순한 고집이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명칭과 실상이 걸맞아야 한다는 생각, 바로 ‘명분’과 ‘실질’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생치(生雉)’를 놓고 벌어진 이 촌극도 그저 웃고 넘길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명분’과 ‘실질’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온 아주 중요한 논란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