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아껴 쓰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굶어 죽었을 걸세.
如不節用 餓死久矣(여불절용 아사구의)

임헌회(任憲晦, 1811~1876)「잡저(雜著)」『고산집(鼓山集)』

고산(鼓山)이 늘 집안사람들에게 아껴 쓰라고 권하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이를 보고서 핀잔을 섞어 “자네는 아껴 쓰지 않은 적이 없네만 자네의 가난은 예전 그대롤세. 아껴 쓴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윗글은 이 질문에 대해 고산이 대답한 말을 적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시도할 때 늘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는 성향이 있다. 공부를 시작하면 무엇이든 척척 이해해 뛰어난 학자가 되는 것을 기대하고, 사업을 시작하면 막대한 이익을 거둬 큰 부자가 되길 바란다. 또 돈을 저축하면 조만간 태산과 같은 돈이 모아지길 꿈꾼다.

이러한 기대감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나중의 성공적인 이미지를 미리 떠올리게 함으로써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최선의 결과는 말 그대로 결과 중의 최선인 것이다.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결과는 최선 이외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말은 곧 미리 가정한 기대와 실제 드러난 결과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일을 계속하려는 추진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소위 맥이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그 일을 그만두게 되고, 심할 경우 그 일을 다시 시도할 의욕까지도 잃게 된다.

고산이 한 말은 우리의 어떤 시도나 노력의 결과를 새로운 시각으로 판단하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거센 물살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한참 노를 저어도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지만, 바꿔 말하면 노를 저은 덕분에 떠내려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그 일을 진행했던 노력의 실제 가치를 늘 과소평가하게 한다.

더욱이 그것이 허울 좋은 기대일 때는 특히 그렇다. 어떤 결과를 판단할 때는 고산이 했던 말을 한 번쯤 상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