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학의 향기

좋은 시절 손에 손잡고 청산을 찾으니,
하나의 산 다 지나 또 다른 산 있네.
청산이 한없이 좋다고 모두들 말하는데,
산을 사랑함에 꼭 이름난 산만 찾으랴.

良辰携手往靑山, 過盡一山還是山. 共道靑山無限好, 愛山何必問名山.
양신휴수왕청산, 과진일산환시산. 공도청산무한호, 애산하필문명산.

이백순(李栢淳, 1930~2012) 「유산(遊山)」『송담고(松潭稿)』

송담(松潭) 이백순(李栢淳) 선생은『사서오경(四書五經)』,『미암일기(眉巖日記)』 등 다수의 번역서와 『한문학대개(漢文學大槪)』 등의 저서를 남긴 분이다.

선생께서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동네 뒷산에 올랐다. 어쩌면 요즘과 비슷한 시기, 신록이 우거진 계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고 이름 없는 산이지만 산언덕 하나를 넘으니 또 다른 산언덕이 나오고 갈수록 운치가 깊어갔다. 가는 곳마다 새소리 울리고, 꽃향내가 가득할 뿐 아니라 골짜기에는 맑은 물 흐르니 모두 “참 좋다, 참 좋다”고 연발했다고 한다. 이때 선생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 ‘그래, 산을 구경하는데 꼭 이름난 산이어야만 하리?’

요즘은 시절이 좋아져서 그런지 ‘여행’ 하면 대부분 국외를 떠올리거나 최소한 국내 유명 관광지 정도는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국외나 국내 명소가 좋기야 좋겠지만 형편상 못 가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관심을 두지 않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안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의 시는 이런 면에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산을 감상하는데 반드시 이름난 산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 내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려고만 한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작고 이름 없는 산이라도 얼마든지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흥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크고 유명한 산만 좋은 게 아니라 모든 산이 다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선생의 생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어디 산만 그렇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나름대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일 것이다. 항상 1등만 하고 유명한 것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잘 나가지 못하고 이름 없는 허름한 것들까지도 애정을 갖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물론이요,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소중히 대하고 각각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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