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경영계 대립 속 일부 사업장은 자체적으로 권한 부여

사업장에서 위험이 발생할 경우 근로자가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리인 ‘작업중지권’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논의는 오는 6월 임시회의에서나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업중지권 강화법안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힌 가장 큰 이유는 현재 노동계와 경영계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원만한 협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의견이 엇갈리다보니 국회도 섣불리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국회와 노동·경영계의 더딘 움직임과는 달리 이미 산업현장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사업장에서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미미한 정도지만 이런 변화가 확산된다면 국회와 노동·경영계도 법안의 조속한 처리에 적극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명확치 않은 법조문 두고 노동·경영계 입장 엇갈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산재의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지키기 위해 ‘작업중지권’이 명시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26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해야 한다. 또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했을 때는 이를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상급자는 이에 대해 적절히 조치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급박한 위험’이라는 법조문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과 근로자가 직접 작업을 중지시킬 수 없다는 점 등의 문제 때문에 노동계와 경영계는 지속적으로 대립해 왔다.


◇경영계 “작업중지권 현행법으로도 충분”

작업중지권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조되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경영계 단체장들도 한 자리에 모여 근로자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뜻을 같이 했지만, 근로자들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난색을 표했다.

경영계는 작업중지권이 사업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법조문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사업장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할 수 있다는데 우려감을 드러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작업중지권에 대한 해석이 보는 시각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기업 운영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의 배경을 밝혔다.

즉 근로자 누구나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게 될 경우 급박한 위험이 아니더라도 작업중지권을 남용해 사업장 운영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또 다른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작업중지권이 자주 발동되면 영업일수 감소로 기업이익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노동계 “근로자 스스로 작업 중단 가능해야”

노동계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근로자 스스로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하는 것이 작업중지권 본래의 기능이라는 입장이다. 현행법은 위험한 상황에 대해 사업주가 판단하고 대피명령을 내리도록 돼 있어 근로자는 수동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근로자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위험상황에서 미리 대피한 경우에는 사업주에게 사후 보고토록 하고 있는데, 이 경우 사업주 등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돼 왔다.

현행법에서는 위험상황을 판단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일부에서는 사업주가 해당 근로자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하는 등 근로자를 보호하는데 실효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일부 사업장, 이미 작업중지권 부여

노동계와 경영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이 국내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미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인정한 경우를 적잖게 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열린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협의안에 대해 노사가 확정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이미 지난해부터 논의돼 오던 사안에 대한 세부사안까지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매뉴얼이 확정되면서 노조간부 52명에게는 작업중지권이 부여됐고, 이들은 위험상황에 대해 언제든지 작업중지권을 발동할 수 있다.

미국계 자동차부품 제조사 보그워너의 계열사 보그워너티에스는 작업장 곳곳에 작업 중지 버튼을 설치해 중대위험요인 발견 시 누구나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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