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또는 ‘신이 행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일컬어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매년 9월이 되면 이 ‘기적’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 연유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민간여객기가 테러범들에게 공중납치되어 미국 뉴욕 맨해튼의 금융가에 위치해 있던 110층 규모의 무역센터 빌딩에 차례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른바 ‘9.11 테러’ 사건이다. 이 사고로 2,700여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으며, 미국 사회는 화폐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당시 전 세계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믿기 어려운 기적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 끔찍한 테러 속에서 2,000명이 넘는 직원 대부분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회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릭 리스콜라가 안전책임자로 있던 모건스탠리였다.

당시 “남쪽 빌딩은 공격을 받지 않았으니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라”는 당국의 안내방송이 있었으나, 리스콜라는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매뉴얼대로 침착하게 전 사원을 대피시켰다. 이에 3개월에 한 번씩 실전처럼 비상대피훈련을 받아온 직원들은 안전요원들의 통솔에 따라 몸이 기억하는 대로 물 흐르듯 대피에 나섰고, 그 결과 직원 대부분이 2차 충돌로 건물이 붕괴되기 전에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건스탠리가 입주해 있던 층이 22층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정작 리스콜라는 전 직원의 탈출여부를 확인키 위해 재차 건물로 돌아갔다가 화를 당했다. 끝까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다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때문에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리스콜라는 기적을 불러온 영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적을 낳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테러가 있기 전에 모건스탠리의 경영진은, 긴급상황 발생시 대피시간 단축을 위한 훈련을 반복 실시하는 리스콜라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1초에 수억 달러의 돈이 오가는 업무시간에 모든 업무를 중단시키고 예외 없이 재난대비 훈련에 참여토록 강요하는 리스콜라가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경제논리로만 따지자면 회사는 리스콜라 때문에 엄청난 ‘적자’를 본 셈이다. 그러나 이윤 추구라는 경제논리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것이 ‘재난대비’와 ‘안전관리’라는 영역이다. 그것이 가지는 강력한 ‘공공성’과 ‘공익성’ 때문이다. ‘군대’라는 ‘조직’을 한 번 생각해보자.

전세계 모든 나라가 전쟁이 발발하지 않음에도 각자의 군대를 가지고 있고 막대한 예산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함으로 해서 얻게 되는 ‘전쟁 억지력’이라는 ‘예방적 효과’를 기대하고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일단 발발하는 순간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재앙과도 같은 것임을 인류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해 왔다. 다시 말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승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재난’도 마찬가지다.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모두가 그 위험과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막상 상황이 발생한 후에는 엄청난 후회와 함께 막대한 피해를 떠안아야만 한다. 그래서 ‘재난’ 역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재난의 예방과 관리’에는 국방비 못지않은 많은 비용과 투자가 수반될 수도 있다. 혹자들은 이러한 비용과 투자가 경제논리로 따져볼 때 지극히 낭비라면서 비난하고 헐뜯기도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앞의 리스콜라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떻게 ‘준비’하고 ‘예방’할 것인가?”라는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우리 안전인들이 현재에 안주하고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가 ‘기회’도 잃고 값비싼 ‘비용’만 지불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2001년 9월 11일의 기적은 우연히 일어난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니라 리스콜라라는 안전책임자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노력의 결과물이다. 즉, 안전에 있어서의 기적은 잘 짜진 매뉴얼과 수많은 훈련을 통해 만들어내는 노력의 결실과도 같다.

9.11 테러 14주기를 맞아 우리 모두가 리스콜라와 같은 ‘기적’을 만드는 안전인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안전인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해보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