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발생한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후 화학물질 화재·폭발·누출사고 관련 소식이 갑작스런 사회적 이슈로 올라섰다. 화학물질사고 뉴스가 급증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이 급격히 높아지자, 정부는 2013년 5월 22일 ‘중대 화학사고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칼을 높이 빼들었지만, 이런 강경한 기조는 채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지난 3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3차 규제개혁 현장점검회의’에서 정부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환경 관련 규제 35건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의 부담 완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는 하지만, 안전 관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안타까운 면이 적지 않다. 물론 취지도 이해하고 중복 규제 해소 등에 대해서는 일면 수긍한다.

허나 규제 완화의 폭이 상당하고 향후 추가적인 완화 조치가 전망된다는 점에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지금은 환경규제를 완화할 때가 아니라 더욱 강화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의 수는 12만여 종에 이르며 매년 2000여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4만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유통되고 있고, 매년 300여종 이상이 새로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런 시류를 감안, EU의 경우 연간 1톤 이상 제조 또는 수입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유통량 및 유해성 등에 따라 등록, 평가,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선진 외국도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철저한 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각종 화학물질 사고가 매년 빈번히 발생하는 등 안전 후진국인 우리나라가 환경 관련 법제도를 완화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이미 도입 초기에도 상당 부분 완화가 됐다. 2013년 12월 말 화평법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신규 화학물질 및 위해물질 관련자료 제출건수를 9개에서 4개로 줄이고 제출기간도 30일에서 3~7일로 단축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했다.

화관법도 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부과하는 과징금 기준을 해당 사업장도 아닌 해당물질 매출로 축소함은 물론, 즉시 신고 판단 시점을 사고발생 15분 이내로 정하며 긴급대응 조치로 지연됐을 때는 면책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이외에도 많은 부분이 완화되었는데, 현재도 앞으로도 합리화라는 명목 아래 계속적으로 완화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기조가 바뀌지 않으면 안전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최우선 가치가 될 수 없다.

일선 현장에서 많이 쓰는 슬로건 중에 “안전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마음가짐을 정부도 가졌으면 한다. 안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닌, 반드시 준수해야만 하는 기본이자 기초이다.

앞으로는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강력한 법으로 화학물질 취급을 규제하여 화학사고를 사전에 예방해 나가길 바란다. 이와 함께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는 법 보다 더 깐깐한 자율안전관리 프로그램을 마련, 시행하여 정책 기조의 변화에 흔들림 없이 항구적인 안전을 확보했으면 한다. 그것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화학물질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의 시선을 완전히 지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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