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안전에 대한 ‘투자’가 당연시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제도적 대책이 마련돼야

지난 2012년 ‘세계 마케팅 정상회의’에 연사로 초청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Dhaka)를 방문해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동차와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 분진이 거리를 휘덮고 있어 숨을 쉬기 어려웠다. 거리에는 생활 쓰레기와 오수 등이 넘쳐났다.

특히 근로자들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노후된 공장 건물과 열악한 근무환경 등 안전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양상이 일부 글로벌 기업의 탐욕으로부터 기인됐다는 것에 분노까지 느꼈다. 이들 기업들은 글로벌 안전·노동·환경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단순히 ‘비용’으로 환산한 후 자신들의 의무를 세계 최빈국에 떠넘겼다. ‘생산원가 절감’이라는 미명 하에 안전관리 역량이 취약한 국가나 지역, 하청 업체에 위험을 전가시키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방글라데시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사고(1129명 사망) 소식을 접하고 크게 놀라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시 이곳에는 의류를 생산해 글로벌 브랜드 업체에 납품하는 공장들이 대거 입주해 있었다. 사고 당일에도 붕괴 조짐이 있었지만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붕괴 징후를 무시한 결과 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글로벌 브랜드 업체들에 대한 비판, 사회적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이 확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로 인한 이들 기업의 직·간접 손실액은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안타깝게도 가격 경쟁을 위해 안전·환경·노동 기준을 낮춰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 현상이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 사회를 ‘위험을 잉태시키고 있는 사회’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최근 국내에 수입된 일부 중국산 철근이 국가표준을 충족하지 못해 KS인증이 취소된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불량 철근을 유통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위험 작업의 하도급, 불법 하도급, 비용 절감 만을 생각한 최저가 입찰 등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 은 “위험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과의 소통을 강화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안전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안전이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정립돼야 한다. 또 안전에 대한‘투자’가 당연시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제도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또 안전이 단순히 지켜야 할 규범이 아닌, 생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회 각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에만 위험 사회를 벗어나 인간 존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안전을 실천하는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이 칼럼은 2016년 1월 29일자 중앙일보 경제면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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