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용 장관 국민안전처

 

술은 세계적으로 그 시작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와 역사를 같이 해 왔다.

안전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 술은 모든 사고의 시작점이다. ‘사고는 절대 한 가지 이유로 발생할 수 없다.’라는 사고이론(Accident theory)에 의하면 사고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합쳐져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요인 중에서 술이 합쳐지면 대형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음주운항’을 들 수 있다. 사실 과거에는 해상에서의 음주운항이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뱃사람들의 고단함을 배려해줘서였는지는 몰라도, 느슨한 규제로 바다 곳곳에서 음주운항이 만연했다.

그러나 1989년 3월 24일 전대미문의 엑손발데스호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하고 나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조선 엑손발데스호가 알래스카만 해협에서 좌초된 이 사고의 핵심원인은 선장의 음주로 인한 판단력 결핍이었다. 당시 선장은 위스키 3병을 마신 상태였고 그 결과는 엄청났다. 4만㎘의 원유가 유출되어 50만 마리의 바다새와 바다표범들이 죽었다. 2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토양 깊은 곳에서는 기름이 배어나오고 있는 등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은 물론 환경적으로도 부정적 여파가 미치고 있다.

법원에서는 50억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선고했고, 사고 수습에 동원된 방제선박이 2000척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사건이 음주운항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종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음주운항 규정이 엄격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선박운항자에 대한 음주 단속기준이 제정되었다. 당시 혈중알콜농도 0.08%이었던 것이 점차 강화되어, 현재는 철도와 항공기 승무원수준인 0.03%로 엄격해졌다. 2014년 12월 23일부터는 음주운항의 벌칙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크게 강화됐다.

선박 음주운항의 적발건수는 연평균 100여건(98.2건)이다. 선종별로는 어선이 70%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예·부선(7.9%), 낚시어선(4.5%), 화물선(2.9%) 순이다. 다중이용선박인 여객선이나 유도선의 경우도 연평균 1건 내외로 적발되고 있다.

점점 강화되는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음주운항에 대한 안일한 생각은 바다곳곳에 물이끼처럼 남아있다.

국민안전처는 선박 음주운항 근절을 위한 홍보와 함께 특별단속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양 안전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안전문화는 의식과 태도가 함께 변화하는 것으로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모두가 공감하고 실천에 옮길 때 조금씩 변화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를 꼭 당부드린다.

먼저, 운항자 스스로가 ‘어떠한 경우라도 음주운항을 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추어야 한다. 운항자는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주변에 음주운항으로 의심되는 선박이 있으면, 반드시 신고하여야 한다. 음주운항은 습관적이 될 수 있으므로, 항상 서로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순간을 눈감아 주는 것이 이후에 그들에게 더 큰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옛말에 ‘목이 말라도 도둑질한 물은 먹지 않는다(葛不飮盜泉水)’는 말이 있다. 아무리 궁해도 불의(不義)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로, 준법의식을 강조한 말이다. 이와 같이 음주운항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지 말아야 할 뱃사람의 도리(Seamanship)인 것이다. 이제는 ‘그럴 수 있다’ 가 아니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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