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 그 쇳물은 쓰지 마라 /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 바늘도 만들지 마라 /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 ?그 쇳물 쓰지 말고 /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 정성으로 다듬어 / 정문 앞에 세워 주게 / 가끔 엄마 찾아와 /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6년 전 국민들의 마음을 눈물로 적셨던 한 이름 모를 시인의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제목의 시다. 2010년 9월 7일 새벽 충남 당진 모 철강회사에서 근무하던 김모(29)씨가 용광로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1600도의 쇳물에서 20대 젊은 청년이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에 대해 전 국민이 마음 아파했고, 한 네티즌은 청년을 추모하는 조시를 인터넷에 남겨 심금을 울렸다.

기억 속에서 애잔함과 함께 잊혀져 가던 이 슬픈 시가 다시 세상에 흘러나오고 있다. 바로 지난달 28일 발생한 서울메트로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정비직원 사망사고 때문이다.

만 19세의 김모 군이 홀로 승강장 스크린도어 점검을 하다가 지하철에 치여 숨졌다. 김 군은 140만원의 박봉을 받고 끼니를 컵라면으로 해결해 가면서 격무에 시달린 이 시대의 젊은 초상이었다.

이 어린 청년이 목숨을 담보로 철로에 매달려 있을 때, 그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던 서울메트로는 보수 업무를 진행 중이었던 사실 조차 몰랐다. 그랬다.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였다. 기존 사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경영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행위가 화를 더 키웠다는 것이다.

이른바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가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경영효율화의 일환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수많은 명예퇴직자들을 용역업체인 은성PSD로 떠넘겼다. 대다수가 정비 업무와 무관한 직종 출신의 이들 퇴직자들은 관리업무, 비상대기, 육안검수 등과 같은 단순한 일을 하는데도 평균 연봉 5100만원을 받았다. 위험 업무는 김 군처럼 박봉을 받는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안전불감증도 김군을 사지로 내몰았다. 구의역 사고는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한 지 1년도 안 돼 일어났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강남역 사고 이후 3개월에 걸친 고심끝에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고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이번 구의역 사고에서 드러났듯 무용지물이었다.

현재 시민들은 사고 현장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 등의 내용이 적힌 추모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저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젊은 청년이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언제까지 산업현장에서 이런 비극이 계속되도록 지켜볼 것인가.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매서운 관심이 필요하다. 우선 첫 번째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서울메트로가 내놓은 ▲승강장 안전문 작업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 명확화 ▲안전업무 전담 자회사 설립 ▲전담 관제시스템 설치 등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매섭게 지켜봐야 한다.

안전이 없다면 그 철로(鐵路)에는 그 무엇도 달려선 안 되며, 그 누구도 거기에 있어선 안 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안전에 대해서는 조금의 타협과 용서도 없는 냉철한 시민들의 눈만이 이 땅의 안전불감증을 척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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