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였다. 이 조치로 향후 3년 동안 이들 업체의 세탁기에는 공동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며, 이 악영향을 축소하기 위한 두 업체의 세탁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미국 정부의 조치는 가장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사고자 하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기업의 활발한 기술경쟁을 국가가 강제로 제한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고율의 관세 부과 때문에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또 혁신적이고 우수한 제품의 시장 진출이 어렵게 돼 미국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 이 불합리한 상황이 최근 대형화재와 산업재해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국내 안전 현실과 겹쳐지면서, 정부의 과도한 제재가 도리어 산업현장의 안전을 위협하고 기업의 선택권을 침해한 사례를 하나 떠올리게 한다.

최근 대형사고가 잇따른 점을 감안해 산업현장의 유해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전문적인 안전기술서비스가 확대 제공돼야 함에도,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사례가 있어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대한산업안전협회 안전전문가가 유해·위험기계를 점검하는 모습.
최근 대형사고가 잇따른 점을 감안해 산업현장의 유해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전문적인 안전기술서비스가 확대 제공돼야 함에도,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사례가 있어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대한산업안전협회 안전전문가가 유해·위험기계를 점검하는 모습.

 

최근 대형사고가 잇따른 점을 감안해 산업현장의 유해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전문적인 안전기술서비스가 확대 제공돼야 함에도,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사례가 있어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산업안전보건분야에 따르면 사업장이 안전진단명령을 받거나 자율적으로 안전진단을 진행하기 위해 업체를 선정할 시 정부가 해당 사업장의 위험기계·기구에 대한 안전검사를 수행한 안전전문기관은 배제토록 제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업장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안전기관간 기술력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

이 규제의 시작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감사원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공안전 등 국민생활·기업활동과 밀접한 민간 위탁사무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감사원은 안전관리업무수탁(안전관리대행)기관이 자신이 관리를 하는 사업장의 위험기계 안전검사와 안전진단을 함께 수행할 시 검사·진단이 부실하게 수행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며, 안전검사 및 진단 기관을 선정할 때에는 해당 사업장의 안전관리업무수탁기관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고용노동부에 통보했다.

이에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안전진단을 받으라는 행정명령서를 발부할 때, “진단기관 선정 시 귀 사업장의 안전업무를 위탁 관리하는 기관 및 안전검사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은 선정할 수 없음”이라는 문구를 삽입해 대행기관의 진단기관 선정을 원천 차단시켰다.


◇안전관리수탁기관 배제는 적절하나 안전검사수행기관 배제는 과하다
안전전문기관 등은 수행기관이 해당 사업장의 안전관리 전반을 담당하는 안전관리수탁업무의 경우 사업장 전체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선대책을 제시하는 안전진단과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해당 사업장의 수탁기관을 진단기관 선정에서 배제시킨 고용부의 조치는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안전검사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도 진단기관 선정 시 배제토록 한 것은 다소 과한 조치라는 것이 이들 기관의 입장이다.

실제로 안전검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프레스, 전단기, 리프트 등 15종의 위험기계·기구로 인한 사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 기계를 정기적으로 점검·관리하는 것이다. 즉, 사업장 내 해당되는 일부 기계·기구에 대해 안전에 관한 성능이 안전검사 기준에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안전진단처럼 사업장 전반의 위험요소를 체계적으로 살피지 않는다.

이처럼 업무범위와 형태, 업무주기 등이 겹치지 않음에도 단지 안전검사를 수행한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검사기관을 해당 사업장의 안전진단기관 선정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업장의 선택권과 안전기관간 기술경쟁을 제한하는 불합리한 조처라 판단된다.

안전진단은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사업장도 있으나, 대부분이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후속조치로 고용부의 명령에 의거해 이행을 한다. 유사재해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니만큼, 진단기관 선정의 기준은 단순 검사수행이력이 아닌 ‘안전기술력’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국내 민간종합안전컨설팅기관 중 대표격인 대한산업안전협회의 경우 최근 3년간 매년 약 9000여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관리업무수탁을 수행한 결과, 재해율(근로자 100명당 발생하는 재해자수의 비율)이 2015년 0.28%, 2016년 0.28%, 2017년 0.2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산업재해율이 계속해서 0.50% 정도에 머문 것을 감안하면 협회의 안전기술력과 기술서비스지원 체계가 상당한 수준임을 짐작케 한다. 헌데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협회가 A업체의 일부 기계에 대해 안전검사를 했다면 A업체는 협회를 안전진단기관으로 선정할 수가 없다.
 


◇특정 사업 전반에 제재를 가하기보다 세심한 족집게 대책 마련해야
정부 조치의 목적이 진정 사업장을 위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면, 해당 사업장이 가장 우수한 안전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기관에 안전진단을 맡길 수 있도록 제한을 해제하는 것이 옳다고 보인다.

다만, 정부가 우려하는 바와 같이 진단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면, 지금처럼 특정 사업 전반에 제재를 가할 것이 아니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세심한 족집게 대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할 것이다. 사고발생 사업장에 내려진 안전진단 명령이라면, 그 사고가 발생한 원인과 연관이 있는 위험기계·기구 등을 점검한 기관만 안전진단기관 선정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조치 등이 그 예다.

한 민간안전전문기관 관계자는 “건설업계가 최저가낙찰제로 인한 부실공사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기술력, 시공능력, 안전경영 등을 총체적으로 살피는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시행했듯이, 안전진단업체를 선정할 때 다양한 안전기술력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토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단시간 내 안전분야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과도한 규제가 필요했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가 공감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미봉책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재해예방사업의 청사진을 그려나가야 할 시점이 됐다.

기업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 가운데, 안전기관간 공정한 기술경쟁을 이끌어내고, 안전산업을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대책을 추진해야 산재왕국의 오명을 벗고 항구적인 안전 강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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