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부대표

 산재예방사업 실효성 있게 개편돼야

민주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국가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 역할을 수행하는 시민단체가 활성화돼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와 경제, 사회, 환경 등 각 분야에 여러 시민단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국민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안전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하 안실련)은 지난 1996년 창립된 안전분야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산업안전에서부터 교통안전 등 우리사회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인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는 창립부터 현재까지, 안실련과 산업안전분야 발전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전개해 왔다.

정재희 명예교수를 만나 안실련의 발전계획과 산재예방정책 발전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교수님과 안실련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30여년 넘게 학생들에게 안전공학을 가르치다가, 3년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에서 퇴임했습니다. 퇴임 직후 명예교수로 위촉됐고, 현재는 안실련 부대표로서 시민단체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안실련은 창립 22주년을 맞은 시민단체로 그동안 어린이 및 노인을 포함한 안전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각종 안전교육 및 캠페인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매년 80여만 명 이상에게 교통안전 및 생활안전 등의 교육을 실시해 왔습니다. 또한 안실련은 산업안전, 생활안전 등 우리사회 안전관련 제도 개선 등을 위한 안전정책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안실련의 활동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실련은 산업안전 분야 발전을 위해 창립된 단체이지만, 여러 대내외적인 환경 때문에 산업안전보다는 교통안전 등 생활안전 분야 발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산업안전 분야에 더욱 힘찬 목소리를 내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안전분야의 최고 시민단체로서 활동분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최근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사고성 사망재해 감소를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전개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올해 들어 안전분야 노·사·민·정·학 각계와 ‘건설현장 사망재해 근절 촉진대회’를 개최하는 등 안전관리 강화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정부 정책에 대한 제언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부의 산업재해예방 정책이 실효성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더욱 높여 나갈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예방 및 저감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재해가 발생했다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임을 어떻게 지울 것인지가 관건인데, 저는 경제적인 규제가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 2007년 제정된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은 기업이나 정부 기관 등을 포함하는 법인이 업무와 관련해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강한 책임을 지도록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연간 매출액의 2.5~10% 범위에서 벌금을 내야하고, 법적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했을 경우에는 상한선 없는 징벌적 벌금부과도 가능합니다.

영국은 이 법을 제정·시행하고 나서 산재 사망사고가 25% 감소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법은 영국에 이어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법이 만들어지고, 제대로 실행된다면 경영자들은 자연스럽게 안전을 무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의식은 곧바로 안전경영으로 발현돼 근로자들의 안전과 보건을 확고하게 지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현장의 이해도를 쉽게 확보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규제와 함께 반드시 지원책도 병행돼야 합니다.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예방을 위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린 규제정책은 안전관리를 위한 인력과 자금, 시간적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에 적용하고, 전체 산업재해의 80% 이상이 발생하는 영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안전관리를 도와주는 지원책이 실시돼야 합니다.

인간존중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은 안전이고, 안전은 또 다른 의미의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산재예방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방향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산재예방사업비의 집행 방향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산업재해의 80~90%가 불안전한 행동 때문에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보건 기술지도 등 인적요인 관리에는 전체 산재예방사업비의 약 12% 정도만 투입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시설개선 등 물적요인 개선을 위한 산재예방시설 융자사업, 클린사업장 조성지원사업 등에 투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안전한 상태’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해 발생 원인의 대부분이 인적요인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지금보다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사고성 사망재해를 지금의 절반으로 감축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부는 반드시 산업재해예방 사업을 실효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안전문제는 정부가 혼자 나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안전분야 노·사·민·정·학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사고성 사망재해 절반 감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행과제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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