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자기소개서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직장을 기웃거리는 학생들을 보면 취업시즌이 왔구나 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들리는 소리에는 면접요령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학원이 등장했는가 하면, 헤어스타일은 물론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세상이라니. 대학 4학년생들이 왜 그렇게 탈모에 민감한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그게 그거 같은 글들이 적지 않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스펙, 스펙을 쫓다 보니 정작 읽어야 할 책들은 읽어 본 적이 없고, 집단이나 그룹 생활이 아닌 개인 생활로 시간을 지내다 보니 남들에게 이야기할 만한 이야기 거리도 없거니와, 혹시 있다 해도 그것을 남에게 설명할 만한 문장력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객관식 문제풀이에 익숙해진 수험생활 탓일 것이다.

필자가 가르치는 과목들은 특성상 정답이 없는 과목들이다. 안전관리, 인간공학, 작업심리학 등의 과목들은 대부분 주관식 서술형으로 질문이 주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주어진 질문에 대하여 잘 읽고 생각하여 문맥(context)을 판단하고, 질문의 포인트를 올바로 이해한 후 자신의 논리를 만들어 서술해야 한다. 그러나 근년 학생들에게서는 자신의 논리를 만들기보다는 읽고 외워서 쓰는 답안이 많아져, 심지어 지난해 선배들이 틀린 답안을 그대로 외워 후배가 또 틀리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의 전공분야 견해를 가지고 말하자면, 사고예방이란 관찰력과 이해력, 그리고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고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위험성평가인데, 이것은 이미 오래 전에 위험예지훈련이라는 기법을 통해 세간에 충분히 알려진 바 있다. 원래 위험예지훈련은 일본의 스미토모 금속(住友金屬)이 개발한 기법으로, 심리학이나 안전기술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 근로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위험요인을 알아차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심리학이나 안전기술과는 거리가 있는 산업공학 분야의 교수 나가마치 미츠오(長町三生)의 도움을 받아 개발한 기법이다. 위험예지능력의 요체는 자기 주변에 있는 위험요인을 알아차리는 능력, 자신의 행위가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위험요인을 사전에 예지하는 능력, 그리고 끝으로 이성적으로 옳다고 판단한 것은 반드시 실행에 옮기는 능력, 이 세 가지를 말하는데, 다시 말해 주어진 상황을 잘 관찰하고 어디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찾아내고 예견하여 해당 위험요인들을 회피하도록 행동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관찰력과 이해력,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므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우수한 결과를 얻게 된다.

그런데 최근 현대인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훑어보는’ 것에 익숙하다. 밤이고 낮이고 거북이 목이 되도록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건 보통이고, 걸을 때는 물론, 심지어 서서 볼일을 볼 때조차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문제는 이 ‘보는’ 행위가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데 있다.

근년 발간된 책들 중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이 있다. 컴퓨터가 우리 생활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특히 휴대폰이나 테이블릿 PC가 생활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서술한 책인데 매우 흥미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는’ 재미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읽는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사색을 하거나 상상을 하거나 하여 이해해 나간다는 의미인데, 현대 인간은 이 부분은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이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학생들에게 논문을 ‘읽어 오라’고 지도하면 얼마 지나 학생들은 ‘읽어 보았다’고 답한다. ‘어떻게 읽었냐, 읽은 흔적을 보자’고 다시 물어 보면 학생들은 열이면 열 ‘컴퓨터 화면으로 보았습니다’라고 답한다. 이것은 ‘읽어 본’ 것이 아니라 ‘훑어 본’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관계 서적이나 문헌을 읽으려면 과히 시끄럽지 않은 환경에서 아날로그식 서적을 손에 들거나, 종이에 프린트된 논문을 앞에 놓고 ‘읽어야’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게 된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거나, 간혹 메모도 기입해 가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인간의 특성이 원래 아날로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눈으로 ‘훑어보는’ 행위를 ‘읽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아스럽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생활 속에 당면하는 상황을 ‘훑어보는’ 것으로는 위험요인을 찾아낼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 속에서 ‘보는’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은 후두엽으로 머리 뒤쪽 부분에 해당하는 반면, ‘생각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은 전두엽으로 머리 앞쪽 이마 부분에 있는 등 뇌 속의 활성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리학자들이 보고하기를, 현대인의 전두엽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쓰지 않으니까 퇴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로댕이 현대인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무리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이대로 가다가는 앞이마는 밋밋하고 뒷통수는 툭 불거져 나온 미래형 뒷짱구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이해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위험요인을 찾아내기를 멈춘다면, 인간에게 과연 미래가 있기는 할지. 그런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 필자는 이번 학기에도 학생들에게 ‘생각해야 풀 수 있는’ 시험문제를 던져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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